[창] 쇼츠의 세상

조효석 2024. 1. 20. 04: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영상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면서 고약한 습관이 생겼다. 대중교통을 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걸 보는지 나도 모르게 슬쩍 곁눈질하는 일이 그것이다. 화면 내용보다는 어떤 종류의 영상을 보는지가 관심사인데, 가장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건 ‘쇼츠’, 그러니까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다. 하나같이 몇 초를 참지 못하고 휙휙 화면을 넘기는 엄지손가락을 수없이 지켜보다 보면 문득 정신이 아득해진다.

얼마 전 팀 회의시간에도 쇼츠 얘기가 나왔다. 이제 우리도 쇼츠용 방송대본을 따로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제안이 요지였다. 여러 걱정이 앞섰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써온 4~5분짜리 유튜브 채널용 영상 대본이 대략 원고지 14~15장 분량이니, 1분 내외여야 하는 쇼츠의 대본은 3장 내외다. 그날 유튜브 영상 소재로 들고 온 아이템이 첫 시험대상이 됐다.

원고지 3장은 신문 지면에서조차 최소한의 사실을 압축한 문장으로 담은 단신기사 정도 분량이다. 나름 공들여 취재해 온 내용을 풀어놓자니 아무리 줄여도 분량이 넘치고, 그렇다고 취재원 목소리 한두 줄만 달랑 집어넣은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차라리 기사였다면 어떻게든 우겨넣었을지 모르지만, 이리저리 분량 들어내길 반복하다 결국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도저도 아닌 7~8장짜리 대본을 데스크에 넘겼다.

‘숏폼’으로도 부르는 이 짧은 영상이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건 2~3년 전쯤, 그러니까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던 와중이었다. 이런 영상은 틱톡에서 유튜브로, 인스타그램으로 삽시간에 번지더니 이젠 모든 SNS 플랫폼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하염없이 화면을 ‘무한 스크롤’ 하는 사람들, 몇 개인지도 모를 쇼츠를 넘기다가 어처구니없이 2~3시간을 흘려보냈다는 경험담은 이제 일상이다.

취재가 업인 입장에서 쇼츠 세상의 도래가 반갑진 않다. 알맹이 있는 취재를 하려면 들일 공은 여전히 많은데, 담아낼 플랫폼은 운신의 폭이 역대 가장 좁아진 셈이니 말이다. 기껏 만찬을 준비했더니 담을 그릇이라곤 간장종지뿐인 요리사의 심정이 이럴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뉴스 큐레이터’ ‘스토리텔러’ 운운하며 세상에 넘쳐나는 뉴스의 맥락을 집어내 해설하는 게 새 시대 언론인의 임무인 듯 말했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얘긴 우스워진다.

짧은 영상에는 필연적으로 최대치의 자극이 담긴다. 길이로 따지면 TV광고가 더 짧겠지만 오히려 그보다 자극이 세다. 화면 바꾸기가 숨쉬기보다 쉬운 환경에서 1초라도 길게 시선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할 이야기의 맥락은 대부분 제거되고, 뇌를 즉각 흥분시킬 단편적인 사실 몇 개나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러니 몇 시간을 내리 보고 나서도 정작 제대로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 리가 없다.

세상 대부분 일은 쇼츠처럼 구성돼 있지 않다. 아무리 단편적인 사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과 과정, 또 다른 사건과 사람, 시공간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맥락’이라고 부른다. 쇼츠 영상을 보는 도구인 휴대전화의 오늘날과 그렇지 않았던 10년 전 의미가 다르듯, 맥락이 바뀌면 의미도 달라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것의 의미를 ‘안다’ 혹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그 맥락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뜻이다.

맥락이 제거된 쇼츠의 세상은 어쩌면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나 징후에 가까울지 모른다. 사람들이 더는 맥락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일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고민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고사하고 스스로조차 돌아볼 여유가 없는 지금 사회에서 쇼츠 영상 너머 이야기와 고민할 거리를 궁금해하는 건 사치이기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쇼츠에 중독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세상일의 맥락을 조금이라도 더 궁금해하는 것이다.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과 호기심이 없다면 타인을 이해하고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 자극적이고 파편적인 영상 너머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에 부당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 더 나은 세상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기 위해 쇼츠 영상보다는 더 긴 시간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