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심이 ‘자리’ 잡은 거리

김지훈,이서현,임소윤,최승훈 2024. 1. 2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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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주차장 늘려도 여전한 불법주차


최근 5년간 서울 각 자치구의 불법주정차 단속 건수가 900만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차·구급차 진입이 지연되는 등 폐단이 이어지자 주정차 위반 차량 단속을 강화하고 주차장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길거리 불법주차는 여전히 만연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주차단속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태료 상향 등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차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과밀화’ 등 주차난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국민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 25개 자치구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간 불법주정차 현황’ 자료를 종합하면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 말까지 5년간 서울시 전체에서 주정차 위반 차량에 대해 886만6704건의 과태료가 부과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자치구(양천구·서초구)는 2019~2020년 집계를 미보유 중이었고, 단속은 벌였지만 계도에 그친 비율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5년간 적발한 실질적인 불법주정차 건수는 1000만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차에 왜 돈을 내야 하죠”

국민일보가 최근 번화가·주거단지 현장에서 목격한 주정차 위반 차량 운전자 상당수는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번화가 길거리에 차를 댄 박모(28)씨는 불법주차를 한 이유를 묻자 “홍대 주변에 사람과 차는 많은데 주차할 공간은 없다”며 “다들 이런 도로에 주차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같은 날 저녁 영등포구 당산역 주변에 불법주차한 김모(55·여)씨는 “직장이 이곳 근처이고, 인근 주차장이 항상 꽉 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주차를 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더욱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근처에 유료주차장이 있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서 이용하지 않는다는 토로도 나왔다. 영등포시장 앞 식당가 골목에 차를 세우고 내리던 박모(66)씨는 “물가가 오르면서 주차비도 같이 너무 많이 올랐다. 기름값과 유지비까지 생각하면 유료주차장을 쓰라는 건 나 같은 서민은 차를 몰지 말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주차장 확보율 141% 달하지만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에 따르면 서울에 등록된 자동차 수 대비 주차장 면수를 보여주는 ‘주차장 확보율’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에는 140%를 넘어섰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서울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312만4157대에서 319만3349대로 2.2% 늘어나는 동안 주차면수는 425만682면에서 450만1875면으로 5.9% 확대됐다. 자동차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주차장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주차장 확보율도 136.1%에서 141.0%로 상승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둔 차량이 100대라면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은 141대 규모가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민일보가 홍대·영등포 등에서 확인한 불법주차 현장 주변에는 사실상 비어 있는 공영주차장이 적지 않았다. 홍대입구역 인근에는 마포구시설관리공단이 흰색 구획을 그어놓고 유료 주차장을 운영 중이었지만, 대부분 차량은 이 ‘유료 구획’을 피해 횡단보도와 골목을 점거하고 있었다. 주택가 이면도로의 경우 양옆으로 주차된 차량들 탓에 성인 남성이 지나가기조차 어려운 곳도 있었다.

“‘주차는 공짜’ 인식 고쳐야”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이어진 잘못된 인식이 불법주차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최병호 박사는 “도로를 사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인식과 법적 규제가 잘 마련돼 있는 해외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공도(公道)를 ‘아무나 써도 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명확하게 소유권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유지와 달리 공도는 지방자치단체 등 관리 주체가 모호한 것도 이런 통념을 키우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인식이 굳어진 데는 지자체의 안일한 단속과 실효성 낮은 처벌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금기정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과태료 수준은 영국의 10분의 1밖에 안 되며 일본과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치인들이 여론 악화를 우려해 적극적인 단속을 막는 것도 문제다. ‘공간 점용에 대한 비용’이라는 주차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단속을 강화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서 승용차를 일반 주차금지구역에 댔을 때 부과되는 과태료는 4만원이다.

“구조적 문제도 주차지옥의 원인”

고질적인 불법주정차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비양심이나 이기심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구조적 문제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의 주차장 확보율이 100%를 넘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늘어난 주차장이 어디에 설치돼 있냐는 문제”라며 “아파트·백화점 등 건축물 부설 주차장의 경우 주민이나 고객 등 관련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주차장 확보율 상승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요 직장과 관공서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특성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과밀화도 만성적 주차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울 차량과 수도권 등에서 유입되는 차량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공간적, 물리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의 누진세처럼 차량이 몰리는 시간대에 따라 주차비용을 다르게 부과하는 ‘가변비용’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법주차 문제는 2017년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었다. 당시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접근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불법주차에서 파생한 인명·재산 피해는 계속되는 실정이다.

소방청이 발간하는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불법주차 차량 탓에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해 연소가 확대된 것으로 조사된 화재 건수는 2020년 94건에서 2022년 116건으로 23.4% 늘었다. 이로 인해 3년간 최소 39명이 다치고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지훈 기자, 이서현 임소윤 최승훈 인턴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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