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반복된 ‘경제 비극’ 통계로 분석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2024. 1.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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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번엔 다르다

저자 케네스 로고프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체스 마스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 연방준비제도(FRS·Federal Reserve System)에서 경제학자로 활동했다. 현재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로고프는 2002년 경제학자 스티글리츠의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에 대해 “풍자가 길면서도 각주는 짧은 빈정거림”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하며 경제학자들로부터 주목받았다. 로고프의 아버지는 로체스터대 방사선학 교수였다. 로고프는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자랐다. 그는 1975년 예일대에서 최우등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에 매사추세츠공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고프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16세에 체스에 집중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미국 체스 마스터이자 제11대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바비 피셔는 “로고프의 자신감 있는 스타일과 체스판에서 정확히 원하는 것을 아는 것에 감명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로고프는 1969년 미국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그 후 몇 년 동안 주로 유럽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토너먼트에서 경기를 치렀다. 로고프는 예일대 경제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체스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한편, 책의 또 다른 저자 카르멘 라인하트 역시 미국의 경제학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먼델의 지도를 받아 컬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수석 경제학자로 근무했으며, 이후 IMF에서 리서치부서의 부국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국제금융시스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케네스 로고프
금융 위기에 대한 분석, 역사적 서술에서 통계적 분석으로

금융 위기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 사건의 전개와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경제사학에 가까운 분야가 돼버린다. 금융 위기 분석의 권위자인 찰스 킨들버거가 경제사학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것이 금융 위기를 예측하고 적절하게 대응해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역사학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데 그친다. 금융 위기 분석도 마찬가지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순 있지만 예측성은 제한적일 수 있다.

로고프와 라인하트가 공동 집필한 ‘이번엔 다르다’는 기존과 다른 방식을 취했다. 역사적 서술 방식을 벗어나 통계적 분석으로 접근했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의 GDP, 환율, 물가, 수출입 통계, 이자율 등을 쭉 점검했다. 단순 지표를 넘어 다양한 자료를 추가했다. 원자재 가격, 주택 시장 동향, 공공부채 등 다양한 거시경제 지표를 수집해 분석했다. 분석 범위도 대거 넓혔다. 800년에 걸쳐 66개국 사례를 파헤쳤다. 기존 금융 위기에 대한 분석과는 연구 규모의 차원이 달랐다. 또한 각종 도표, 그래프, 통계적 근거를 무더기로 내놨으며, 논리적 엄밀성도 여타 경제학 분야에 밀리지 않았다.

반복되는 금융 위기 사례들로부터 패턴을 찾아내다

“금융 위기는 왜 예측하기 어려운가?”

책의 화두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위기는 왜 발생하고, 발생 시점은 언제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 책은 지난 800년 동안 세계적으로 반복돼온 금융 위기 사례들을 분석해 패턴을 발견했다. 결론은 과도한 부채로 일궈낸 호황은 금융 위기로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호황이 올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착각한다. 또 전문가들은 과거의 실수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과거 규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런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금융 위기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첫째, 전문가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데 앞장서고 여론이 이에 열광했다.

둘째, 단기 자금을 빌린 규모가 확대됐고, 많은 이들이 빌린 돈으로 투기에 뛰어들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치솟는 경향을 보였다. 이후 높은 부채 규모를 지탱할 만큼 성장을 이루지 못하자 급격한 자금 유출과 함께 금융 시장이 마비됐다. 즉, 단기 자금의 흐름이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 셋째, 금융 위기는 한 나라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나라에 연쇄 작용을 일으켜 위기가 전이됐다.

넷째, 위기들은 통계적으로 정부부채와 연관성을 보였다. 정부부채는 일반적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가면 금융 불안과 채무불이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방대한 분석과 논의 끝에 저자들은 두 가지 함의를 내놓는다. 하나는 금융 위기 조기경보 모델의 중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 정책의 의미다.

조기경보 모델은 금융 위기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금융 위기는 일단 발생하면 피해가 순식간에 커지지만, 이를 회복하는 과정은 더디게 이뤄진다. 따라서 위기의 전조를 예측하는 조기경보 모델은 필수로 만들어야 한다.

금융 정책은 결국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인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규제를 철회해 복잡한 금융 상품이 무분별하게 확산됐고, 이는 금융 시스템에 거대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게 2008년 금융 위기를 통해 드러났다. 즉, 금융 규제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계해야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엔 다르다’라는 구호가 떠도는 상황에서도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금융에 있어 가장 위험한 두 단어는 바로 ‘이번엔 다르다’다. 메릴랜드대의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와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공동 집필한 걸작 덕분에 앞으로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데이터는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정량적 분석을 할 때 꼭 필요한 자료들이다.”

서평 그대로, 책은 금융 위기를 예측하는 조기경보 모델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다만, 저자들도 모든 특수한 사례까지 설명하지는 못했다. 바로 일본 경제다.

책은 전반적으로 대규모 공공부채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한다. 공공부채는 그 목적상 국가 경제에 필요한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활용되지만,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장을 자극하지 못하고 국가재정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이후 금융 위기를 발생시키는 잠재적 요소로 작용한다.

뉴욕 연준 출신 경제학자이자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쿠는 일본 사례를 들어 이 책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리처드 쿠는 로고프와 라인하트의 접근 방식은 국가의 재정 지출을 통해 국가 경제 전반에 일으키는 파급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적으로만 접근해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는 것. 불황 국면에 들어간 경제에서 공공부채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재정 지출을 축소할 경우, 금융 위기가 아니라 통화 정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경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일본은 막대한 규모의 공공부채를 보유하고 있고, 20년에 걸쳐 그 위험성을 경고받아왔지만 1997년 이후로는 별다른 금융 위기가 발생하진 않았다. 일본의 자본 통제에 대한 정책적 효과와 일본 엔화의 국제적인 위상의 결합을 통해 이뤄낸 결과다. 이런 특수성은 로고프와 라인하트가 제시한 분석의 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임은 분명하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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