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입맛 찾아…킹크랩 ‘1만㎞ 대장정’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1. 1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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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의 여정

노르웨이는 자타공인 수산물 강국이다. 노르웨이 연어는 말할 것도 없고 프리미엄 고등어와 대구 같은 어종이 큰 인기를 끌며 전 세계 식탁을 점령 중이다. 약 550만명 인구를 보유한 크지 않은 나라지만 중국에 이어 매년 수산물 수출 2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연어나 고등어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뛰어난 품질 덕분에 수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2023년 기준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 수출량은 2500t으로 전년 대비 43% 늘었다. 한국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레드 킹크랩이 자라기 최적의 환경인 차갑고 청정한 바다, 어획부터 전 유통 단계에 걸친 철저한 관리 시스템, 여기에 지속 가능성을 위해 어획량을 엄격히 관리하는 현지 어민과 노르웨이 정부 노력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한국은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에 있어 중요한 시장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은 전 세계에서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 최대 수입국이다. 2013년에는 전체 50%에 달하는 물량을 한국에서 수입했을 정도다.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산과 비교하면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수율이 좋고 뛰어난 맛 덕분에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이들에게 인기다. 킹크랩 다리 부위만 찾는 여타 국가와 달리, 살아 있는 ‘활 킹크랩’을 통째로 들여오길 원하는 국내 수요도 여기 한몫한다.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이 잡히는 그 순간부터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 과정을 직접 따라가봤다. 레드 킹크랩이 어획되는 노르웨이 최북단에서 항공 배송 전 킹크랩이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킹크랩 호텔’,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1만㎞가 훌쩍 넘는 긴 여정이다.

9월 20일 노르웨이 쵤르피오르 디피요르 지역에서 레드 킹크랩 어획이 진행 중이다. 오른쪽은 이날 잡은 레드 킹크랩을 들어 올리고 있는 기자의 모습.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 제공)
암컷과 어린 킹크랩은 모두 방생

품질 관리와 지속 가능 조업이 목적

지난 9월 18일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을 만나기 위해 짧지 않은 비행에 나섰다. 노르웨이에서도 최북단에 있는 핀마르크 지역이 레드 킹크랩 주 서식지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수도 오슬로에서도 북쪽으로 약 2000㎞ 떨어진 마을 쵤르피오르(Kjøllefjord)다. 인천공항에서 오슬로까지 16시간, 오슬로에서 트롬쇠까지 다시 트롬쇠에서 메함까지 각각 2시간 정도를 날아간 뒤 차로 40분 가까이를 더 들어가야 나온다. 주민이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9월 20일 레드 킹크랩 어획 체험을 위해 쵤르피오르 인근 해안가 디피요르(Dyfjord)로 향했다. 이곳에는 레드 킹크랩 어획과 분류, 포장, 가공 사업을 하는 지역 기업 ‘리더피스크(Lyder Fisk)’가 위치해 있다. 소형 어선 5개와 60명 직원을 보유한 작은 기업이지만 지역 사회에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생계를 잇기 위한 일터일 뿐 아니라, 새 학교나 마을회관을 짓는 등 공동체 리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대표인 스벤 리더와 그 아내인 린 뫼르크 리더,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4명의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 기업이기도 하다. 연평균 매출은 약 5억크로네(약 640억원)다.

오전 10시, 길이 20m 남짓한 크지 않은 킹크랩 어선에 몸을 실었다. 함께 탑승한 리더피스크 직원은 장남인 맷츠 베가 리더를 비롯해 고작 3명뿐이다. 스벤 리더 리더피스크 대표는 “어획 지역까지 이동 거리가 짧아 2명 승선할 수 있는 작은 어선이면 충분하다. 연료 소비도 많지 않아 좋다”며 “대형 선박을 활용해 한꺼번에 대량 어획에 나서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빙하 침식으로 형성된 ‘피오르’ 절경을 배경으로 차가운 북극해를 한 시간가량 나아가면 레드 킹크랩 어획 포인트에 도착한다. 방식은 사뭇 단순하다. 미리 설치해놓은 킹크랩 통발을 건져 올리면 된다. 통발에는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데, 채 다 크지 않은 어린 킹크랩이 빠져나갈 수 있게끔 한 배려다. 통발이 유실될 경우 잡혀 있던 킹크랩이 달아날 수 있도록, 시간이 지나면 그물이 자연히 녹아내리게끔 설계했다.

어선에 설치된 작은 크레인이 통발을 끌어올리면 어부들이 킹크랩을 어선 탱크에 옮겨 담는다.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20개 가까운 통발을 하나씩 끌어올리는데 그때마다 환호를 터트렸다. 많을 때는 수십 마리가 넘는 킹크랩이 바글거리는 통발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한번 조업을 나가면 평균 4~500㎏ 정도를 잡는다. 국내 평균 시세로 단순 계산하면 5000만원에 해당하는 양이다.

어획과 동시에, 즉각적인 선별이 함께 이뤄진다. 판매에 부적합한 킹크랩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이다. 어부는 능숙한 손짓으로 한 마리 한 마리를 빠르게 살펴보면서 최상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크기·수율을 가진 개체만 선별한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킹크랩으로 가득했던 탱크는 어느새 ‘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어버린다. 한눈에 봐도 절반 넘는 킹크랩이 다시 바다로 던져진다. “저 아까운 걸 대체 왜 돌려보내는지”를 물었다. 맷츠는 “일단 암컷은 모두 방생한다. 몸에 상처가 있거나 아직 충분히 크지 않은 킹크랩도 마찬가지”라며 “당장 팔 수 있는 크기라 해도 더 자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품질 관리를 위해 돌려보낸다”고 설명했다.

이날 잡은 레드 킹크랩 중 가장 큰 녀석은 무게가 4㎏에 달했다. 때에 따라 최대 9㎏ 초대형 킹크랩도 잡힌다고 한다. 국내에선 1.8~3㎏ 킹크랩이 주로 거래된다. 스벤 대표는 “수확기가 9월에서 12월 사이로 정해져 있는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달리 노르웨이는 1년 내내 지속적으로 킹크랩 어획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다.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갓 잡은 레드 킹크랩을 바로 맛보는 시간. 리더피스크가 최근 만들었다는 ‘킹크랩 레스토랑’이다. 레드 킹크랩을 쪄서 먹는 한국과 달리 노르웨이는 삶아서 먹는다. 조리가 간편하다는 이유에서다. 찐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유튜브 채널 ‘입질의추억TV’를 운영하는 김지민 작가는 “노르웨이처럼 수온이 낮은 바다에서는 킹크랩이 느리게 생장하면서 특유의 맛과 식감이 더 올라간다. 수온이 낮은 곳에 사는 갑각류에는 글리코겐 같은 성분이 훨씬 더 많이 농축된다. 수명도 더 길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은 뛰어난 맛과 높은 수율을 갖춘 프리미엄 제품으로 명성이 높다. 차갑고 청정한 노르웨이 바다, 그리고 전 유통 단계에 도입한 철저한 관리 시스템 덕분이다.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 제공)
킹크랩 쉴 수 있는 ‘호텔’도

수온·염도 조절…배송 전 컨디션 회복

노르웨이 북부 해안가에서 잡은 킹크랩은 산소 농도가 유지되는 수조에 담겨 차로 30시간 넘는 거리를 밤새 달린다. 목적지는 이른바 ‘킹크랩 호텔’이라고 불리는 오슬로 공항 인근 창고다. 긴 운전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레드 킹크랩이 컨디션 회복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수산물 물류 기업 ‘에어카고로지스틱스(Air Cargo Logistics)’가 운영하는 창고로, 레드 킹크랩은 이곳을 거쳐 살아 있는 상태로 한국까지 항공 직배송된다. 킹크랩이 호텔에서 머무는 기간은 4~5일 정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회복에 필요한 기간이다.

창고에는 킹크랩이 머무는 대형 수조 수십 개가 들어서 있다. 일견 수산물 시장처럼 보이는 창고지만 뒤편으로는 반전이 펼쳐진다. 마치 대형 맥주 공장에서 볼 법한 거대한 기계 장치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킹크랩 컨디션 회복을 돕기 위해 해수를 공급하는 장치다. 수조 탱크에 달려 있는 정밀 센서로 수온과 염도를 실시간 점검한 후, 최적 수치로 조절하는 게 목적이다. 수온과 염도에 민감한 킹크랩을 위한 설계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킹크랩은 최종 포장 전 다시 선별 과정을 거친다. 킹크랩 자세나 다리 껍질 경도 등을 파악한 후 최상품만 포장에 들어간다. 토르드 콩스빅 에어카고로지스틱스 물류 매니저는 “킹크랩이 다리로 서 있다면 컨디션을 다 회복했다고 보면 된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거나 다리 껍질이 물렁거리는 킹크랩은 따로 분류해놨다가 ‘회복실’이라고 불리는 특별 탱크로 옮긴다”며 “레드 킹크랩은 물 없이도 45시간 넘게 생존이 가능하다. 한국까지 쌩쌩한 상태로 운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슬로 공항 인근에 위치한 ‘킹크랩 호텔’. 수조 탱크 뒤편으로는 수온과 염도를 실시간 조절하는 각종 최신 설비를 갖춰놨다. (나건웅 기자)
가리비 조업 30년 금지한 노르웨이

지속 가능성 위한 정부·어민 노력

레드 킹크랩 품질이 뛰어난 이유로, 노르웨이 어민과 정부의 노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조업’을 위한 고민과 연구가 엿보인다. 개체 수를 보존하고 해양 생태계를 잘 유지해야 품질 좋은 수산물을 꾸준히 내놓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노르웨이는 대량 어획을 지양한다. 레드 킹크랩 역시 철저히 쿼터제를 따른다. 노르웨이 수산물 애널리스트가 주도하는 자원 관리 조사를 토대로 매년 총 어획량을 정해놓고 그 이상 잡지 않는다. 2023년 기준 노르웨이 레드 킹크랩 총 어획량은 2130t. 그중 잡을 수 있는 암컷 개체 수는 5.5%로 엄격히 제한한다. 같은 기간 러시아 총 어획량은 3만t 수준이다.

노르웨이 어부로 구성된 어민판매조합도 철저한 자율 관리로 유명하다. 어업을 위해서는 엄격한 요건을 갖춘 어획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어부마다 레드 킹크랩을 얼마나 잡았는지도 조합에서 매 순간 집계·관리한다. 조합이나 정부는 물론 과학자도 연구에 활용할 정도로 공인된 데이터다. 신느 글드브라센 노르웨이 어민판매조합 마케팅 매니저는 “해당 데이터는 출항 전 어부들의 목표 어획량 기준이 된다. 어부는 이를 토대로 어획량을 조절하고 기존 어획량이 충분하다면 굳이 출항하지 않는다”며 “어부들 모두 지속 가능성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레드 킹크랩뿐 아니다. 노르웨이 정부의 지속 가능한 조업에 대한 고민은 다른 수산물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극 가리비’ 조업 방식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 북극해에 서식하는 가리비는 평균 수명이 1~2년에 불과한 다른 가리비와 달리 7~9년을 산다. 그만큼 크기가 크고 풍미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북극 가리비는 ‘준설 작업’을 통해 채집했다. 쉽게 말하면 초대형 어망을 설치한 선박이 해저 바닥을 이리저리 쓸고 다니며 가리비를 건져 올리는 방식인데, 해양 생태계에는 큰 악영향을 끼친다. 수많은 해양 생물 보금자리인 해저 바닥이 무차별 파괴되는 데다, 잡지 않아도 되는 다른 생물도 함께 잡힌 후 버려지기 때문이다. 해양 생태계 파괴 우려와 북극 가리비 개체군 급감에 따라 1992년 노르웨이 정부는 준설 작업을 통한 어획을 법적으로 금지하기에 이른다.

최근 주목받는 건 30년 만에 처음으로 북극 가리비 어획 허가를 받은 노르웨이 스타트업 ‘아바오션(Ava Ocean)’이다. 바닥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기존 방식이 아닌 물 흐름을 이용해 필요한 어패류만 채집하는 기술이다. ‘진공청소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잡은 수산물을 자동 분류 후 방생하는 방식도 적용했다. 어업을 본격 시작한 지는 2년이 채 안 됐지만 벌써 4000만유로(약 64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아바오션과 노르웨이 정부, 각종 연구기관이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온 결과다.

아네트 지모우스키 아바오션 최고마케팅커뮤니케이션 총괄책임자(CMO)는 “해저 환경과 해양 생물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생태계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성게 같은 다른 침입종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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