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대 정원 확대 앞서 건강보험·의료개혁 선행돼야"
의료계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건강보험과 의료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과 바른사회시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이 19일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건강보험과 의료개혁 없는 의료인력 조절은 안 된다’를 주제로 의료개혁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의료계 참석자들은 "정부 정책이 의대 정원 확대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하며 "지역·필수의료 문제는 의학 교육부터 건강보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시스템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현상과 지역의료 붕괴가 개선된다면 찬성하고 싶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지역·필수의료 문제 발생의 원인이 의사 수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은 진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해 뽑는 전공의 정원과 지원자 수는 1대 1로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인기 있는 과엔 지원자가 몰리지만 필수의료과는 기피가 발생한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수도권 외 지역에 의사가 가지 않는 이유도 환자들이 지역의료 이용을 꺼리기 때문"이라며 "2000년 건강보험 통합 이후 권역별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면서 지역 의료를 기피하는 풍조가 정착했다. 이는 정책 실패로 인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의사 인력 조정에 앞서 거버넌스부터 구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인재를 교육했지만 상위 수천 명이 의대로 오는 상황이다. 그렇게 온다고 해도 의과학이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의대생 1등부터 10등까지 모두 피부과를 택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 의대 정원 1000명을 증원하면 상위권 대학 이공계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몰린다. 미래과학인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건강보험 재정 관점에서 의대 정원 확대의 부작용을 예상했다. 우 원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의료비도 급증하고 있다"며 "2017년 소위 '문재인 케어' 이후로 증가세는 더 빨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재정 수지가 2024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엔 누적 준비금이 모두 소진되며 2032년 누적 적자액이 61.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의사 수 증가가 건보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분석했다. 우 원장은 "의료비(건보재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가 의사 수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1명이 늘어날 경우를 분석하면 사회의 의료비 총지출은 약 22%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의사를 무한정 늘리겠다고 하면 건보재정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앞서서 파탄을 맞게 되고 결국 건보료 폭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정책연구소장은 "의대생을 증원해도 교육할 여건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의학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국 의대 7개 기초의학 과목 교수가 지난 2018년 대비 2022년 80여명 줄었다"며 "학생 수만 늘리면 교육이 될 거라는 정부 생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또한 이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이나 연구중심병원 지정기준은 너무 병원 쪽으로만 쏠려 있다. 기초의학이나 의대 임상실습 교육에 투자하도록 평가 기준에 반영돼야 한다"며 "사회에서 필요한 의사가 왜 부족한지 묻기 전에 이런 의사 양성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 인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독립적인 상설 자문기관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 대표가 과반 이상으로 둔 독립적인 상설 자문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며 "의사의 공급과 분포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의사 인력 수급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의사와 전문의, 세부 전문의의 현재와 미래 부족·과잉을 예측하는 등 의사 인력 계획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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