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싸우고서야 깨달은 '싸움의 지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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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숙 기자]
▲ 사춘기 아이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오늘은 싸움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오해가 생긴다.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동료든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이들과 말이다. 적절한 시점에서 풀리면 좋겠지만 작은 불씨가 갈등이 되어 급기야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싸우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미운 정이라도 든다 하니 대화단절보다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잘(?) 싸워보는 건 어떨까 싶다.
15초의 마법
근 30년을 같이 산 남편이나 20년을 함께 한 아이에게 화가 날 때 난 이런 방법을 쓴다. 우선 남편. 뭔가 잘못하거나 감정을 건드리는 말을 하면 난 즉각적인 반응을 피한다. 바로 말을 뱉어 버리면 서로 감정이 상하니까. 이럴 땐 '15초의 법칙'을 생각한다. '성질나는데 15초는 무슨!' 이럴 수도 있지만, 15초만, 잠깐만 참으면 절정에 달한 분노지수가 신기하게 조금은 사그라든다.
그리고 밖에 나가 빵을 사거나 커피를 마신다. 좋아하는 걸 사거나 먹으면 확실히 기분이 나아지더라. 대신 2시간은 넘기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냐면 그건 아니다.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내가 화난 상황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빵과 커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들어가 호기롭게 말하면 화가 누그러진 상태라 뾰족했던 대화가 조금은 둥글어진다. 요즘은 '60대 어느 노부부 이야기' 노래를 들으면 화난 감정이 짠한 마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타인과 같이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난 무조건 이래" 또는 "나는 원래 ~해"라는 딱딱한 생각을 좀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바꾸자는 것이다. 부부든 자식이든 말이다.
딸아이와는 아이 사춘기 때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아무리 호르몬 때문이라지만 아이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볼 땐 내가 저 아이를 낳은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어느 여름날, 계속되는 소모전 지쳐 딸과 나는 며칠 휴정기간을 갖기로 했었다. 서로의 불만을 생각해서 얘기하기로 하고.
3일 정도 지난 후 서로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난 아이의 빈정거리는 말투가 듣기 싫었고, 아이는 과거 잘못까지 소환하는 엄마의 말이 기분 나빴다는 것을.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더라. 그땐 그냥 엄마를 이기고 싶었다고. 그 후로도 많이 싸웠지만 이 일을 계기로 싸움의 한계선을 넘지는 않았다.
내 경험이지만, 부모로서 지나보니 아이가 사춘기라면 이런 점을 알아두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첫째, 아이는 지금 호르몬 변화를 겪고 있다. 둘째, 사춘기를 이미 지난 내가 한발 물러나야겠다. 상대방은 수만 볼트짜리 전압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으니 손대지 않는 편이 안전을 위해 좋지 않을까. 적정거리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도 지혜라 생각한다. 셋째, 가끔은 '엄마 아빠' 대신 '나'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부모자식이란 관계보다 그저 옆에 있는 존재로 봐주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덜 주는 것 같다. 넷째, 사춘기는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그 시기를 잘 보내고 있다고 아이를 응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살면서 싸움이라는 걸 피할 순 없겠지만... 내 마음그릇을 넓혀놓으면 약간의 싸움은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한 매운맛 조미료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맛있게 칼칼한 김치찌개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싸움을 벌였다. 이번 상대는 무생물이다.
설거지하는 도중, 앞머리가 내 코와 볼을 자꾸 간질였다. 옷소매로 대충 넘겨봤으나 또 내려오기에 멋지게 고개를 흔들어 한번에 머리카락들을 뒤로 젖혔다. 순식간에 차분해진 내 머리카락을 보며 난 이겼다고 좋아했다.
▲ 씽크대에 빠진 머리카락 개수구에 자리잡은 머리카락과 싸우다 찍은 사진. |
ⓒ 백현숙 |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피구에서 공을 피해 뛰어다니는 마지막 선수처럼 꽤 빠른 물살을 요리조리 가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 모든 그릇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이제 혼자 남았다. 요 녀석을 어찌할까 잠시 고민하다 고무장갑을 벗고 그냥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바로 잡혔다. '이게 뭐라고' 생각하며 혼자 씩 웃었다. 이렇게 쉽게 집을 것을 고무장갑 끼고 혼자 성질내다니.
살다 보니 어떨 땐 과하게 힘을 넣기보다 살짝 힘을 빼는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더라, 그게 사소한 일일 때는 더욱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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