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이 뭘지 생각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이진순 2024. 1. 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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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서 2년간 식물인간으로 살다 간 '김할머니'... 존엄사 질문을 유산으로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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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기자]

요즘 TV에서는 배우 오연수 씨의 목소리로 '이것은 인생의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 인생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로 시작되는 짧은 광고가 나온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권장하는 캠페인 광고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는 지난 2018년 시행되었고, 2023년 10월에는 참여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물론 의향서 작성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사회가 존엄한 죽음과 연명의료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된 데는 '김할머니사건'과 '보라매병원사건'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사건을 거치면서 현재의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졌고, 지금 국회에는 소위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어 있다.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사안
 
 노인의 손(자료사진).
ⓒ Alexas Fotos / pixabay
죽음의 문제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자기결정권의 문제이다. 지금은 자기 자신이, 그리고 사회가 어떤 선택과 역할들을 해야 우리가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다 갈 수 있을지 더 근본적이고 더 폭넓게 고민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이 과정에서 위 두 사건을 되짚어보는 것은 고민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8년 2월, 76세의 여성이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받았다. 검사 중에 출혈이 심해서 뇌가 손상되었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회생 가능성은 없었다. 당시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이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판단했고, 자칫 의료과실 소송으로 이어질까 우려해서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중환자실 입원이 3개월 정도 되어가자 가족들은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평소 원하지 않았다"며,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은 이를 거부했고, 1년여간의 법적 분쟁이 시작되었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5년 전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숨질 때 할머니가 연명치료를 반대했던 것을 본인의 의사로 추정했다. 국내 처음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판결에 따라 병원 측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었다. 의료진은 할머니가 몇 시간 이내로 숨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스스로 호흡하며 삶을 이어가서 또다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됐다. 제대로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진작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생사의 법적 분쟁에 휘말리다 보니 정작 사건의 주인공인 할머니의 삶은 오히려 뒤로 밀려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나 또한 들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튜브로 영양공급을 받으며 201일을 더 살다가 2010년 1월에 돌아가셨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생명을 이어간 2년여에 걸친 할머니의 삶의 과정을 통칭 '김할머니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의료진은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왜 이렇게 강력하게 거부했을까? 예전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법적 규정은 없었으나, 의료진과 가족이 합의해서 이루어지곤 했다. 그런데,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겪으며 분위기가 변화됐다. 이 사건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진 사건이다.

사건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58세 환자가 집에서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그는 당시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아 혈종은 제거하였으나, 뇌부종으로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그의 부인이 달려왔지만, 의사는 계속 치료를 하더라도 회생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했단다.

그녀는 수술 다음 날, 남편이 사업 실패 후 17년간 가족을 계속 구타해왔으며,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는 물론 지금까지 나온 병원비 260만 원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며 병원에 퇴원을 요구했다. 의사들은 퇴원하면 환자가 바로 사망할 거라며 말렸지만, 부인은 강경했다. 결국 의료진은 '퇴원 후 환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를 받고 나서 환자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도착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 환자는 5분 뒤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개입하게 되었고, 사건은 법정으로까지 가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1998년 1심 판결에서는 사법사상 처음으로 의사의 치료 중단에 대해 살인죄가 적용되었다. 1심 판결 직후, 정부는 회생 불가능한 환자여도 사망할 때까지 생명 연장 장치를 떼어낼 수 없다는 고시를 의료현장에 보냈다.

전국 병원에서는 처벌을 면하기 위해 환자의 퇴원을 막는 사태가 종종 일어났다. 그 결과, 중환자실은 퇴원을 원하지만 하지 못하는 말기암 환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7년만인 2004년, 대법원은 아내에게는 살인죄를, 담당 의사들에게는 살인방조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 이후, 중환자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자칫하다간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깊게 자리 잡은 듯하다. 환자 측에서 불필요한 치료를 원치 않더라도 중단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 됐다.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를 '집에서 임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가족들의 요구도 모두 거절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집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을 역전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국민 4명 중 3명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고 있다. 집에서 죽기를 원하는 비율이 70%를 넘지만, 실제로는 병원에서 죽는 경우가 70%를 넘는 것이다. 아마도 보라매 사건의 영향이 이 높은 비율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사건 이전에는 말기 환자가 자택 임종을 원하면, 의료진이 방문해서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자연의 일부가 된 무덤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는 이 무덤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아늑한 편안함마저 느끼게 된다. 자연스럽게 죽어가고, 죽은 후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진순
 
위 사건들은 죽음과 의료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2016년 '연명의료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전, 처벌에 대한 의사들의 두려움, 최대한의 치료가 최선이라 믿는 가족들, 재택 의료와 돌봄이 어려운 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집에서 죽고 싶다는 노인들의 바람은 여전히 이루기 힘든 꿈에 머물러 있다.
이 법은 집에서의 죽음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아주 조금 줄이고, 처벌에 대한 의사들의 두려움을 조금 줄여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국립연명의료기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의향서 서식이다.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 서식의 작성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고민과 선택의 과정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 국립연명의료기관
 
그런 의미에서 법의 제정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 등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마지막, 죽음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이고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꾸준히 한 걸음씩 걸어 나가며, 죽음에 대한 그리고 결국은 삶에 대한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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