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로 위장취업한 유명 작가가 본 프랑스의 실체
[김형욱 기자]
'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라는 부제를 단 프랑스 에세이 <위스트르앙 부두>는 국제 문제 전문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의 2010년 작이다. 조지 오웰의 저 유명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이 연상되는 탁월한 르포르타주로 크게 화제를 뿌렸다.
이 작품을 접한 프랑스 대표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직접 원작자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유명 소설가이자 명감독이기도 한 엠마뉘엘 카레르를 섭외해 제작했다. 칸 영화제, 세자르 영화제,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등 원작뿐만 아니라 영화도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는 유명 작가가 고용 불안에 관한 책을 쓰고자 신분을 숨기고 연고 없는 항구 도시로 가 청소부로 일하며 노동자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와중에 진심 어린 신뢰가 바탕된 우정을 쌓는데, 언젠가 진짜 신분을 노출해야 하기에 불안할 뿐이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 이미지. |
ⓒ (주)디오시네마 |
유명 작가 마리안은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캉으로 와서 일을 구하려 한다. 그녀는 고용 불안을 주제로 책을 집필하려 신분을 숨긴 채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고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하는 캉이 적격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마리안은 청소부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상사에게 말대꾸했다가 그 자리에서 해고당한다. 함께 잠깐 일했던 동료를 통해 구형 자동차를 구해 다른 곳에서 청소부 일을 이어간다. 한 곳을 거쳐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젊은 싱글맘 크리스텔의 소개로 여객선 청소를 시작한다. 숨 쉴 틈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청소를 해야 한다.
마리안과 크리스텔은 단순히 동료에서 그치지 않고 진한 우정을 쌓아간다. 마리안으로선 빈곤한 노동자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반면, 크리스텔은 너무 바빠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여유를 마리안 덕분에 누려 본다. 하지만 마리안이 신분을 노출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깊은 우정을 쌓았지만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는 힘들어 보인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추억
15년도 더 된 소싯적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가서 가장 처음 한 일이 '청소'였다. 대형 마트가 문 닫는 시간인 새벽, 단 두명이 모든 곳을 쓸고 닦아야 했다. 한편으론 평생 못해 볼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청소 일을 그리 오래 하진 못했다.
극 중에서 마리안은 경제 위기의 실체를 직접 느껴 책을 쓰고자 청소 일에 뛰어들었다. 그녀로선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또 노동자들의 일상이 피폐하면 피폐할수록 쓸 게 많아 내심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정 안 되면 그만두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 유명 작가 생활을 이어가면 되니 말이다. 생존이 걸린 절박한 심정으로 언제까지고 계속하진 않을 게 아닌가.
심지어 그녀 때문에 누군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거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도 그녀는 굴하지 않는다. 최저 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세상에 그 실체를 알리겠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 하지만 영화 제목대로 그녀와 그녀가 취재하는 대상자들의 간극은 서로를 '세계'라고 표현할 만큼 동떨어져 있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 이미지. |
ⓒ (주)디오시네마 |
<두 세계 사이에서>는 경제, 정치, 문화, 역사, 복지, 이미지 등 국가경쟁력 면에서 자타 공인 세계 최선진국 프랑스의 '밑바닥'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나라가 다 해 줄 것 같지만, 그래서 못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단돈 몇천 원, 몇만 원이 없어서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믿기 힘들지만 현실이다.
과연 두 세계는 이어질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처럼 한쪽이, 그러니까 더 많이 가진 쪽이 신분을 숨긴 채 삶의 여유를 전하며 진심 어리게 다가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것인가. 더 많이 가진 쪽이 신분을 속일 때와 빈곤한 쪽이 신분을 속일 때 각각 맞게 되는 파국의 양상을 생각해 보면, 그 간극 또한 절대 좁혀지지 못할 것 같다.
영화는 마리안의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려 한다. 진심과 진심이 맞닿으면, 아픈 진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생존인 이들 입장에선 진심도 사치일 수 있다. 그들을 위해 진실을 속였는데 정작 그들은 상처받았다니, '르포르타주'는 누굴 위한 것인가?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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