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도 놀란 '금쪽이' 현종, '고려거란전쟁'의 위기
[김종성 기자]
거란 2차 침입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고려는 '양규의 선전' 등을 발판으로 거란을 가까스로 격퇴했다. KBS2 '고려거란전쟁('고거전')'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양규를 비중있게 다루며 화제를 모았다. 양규 역을 맡은 지승현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고, '2023 KBS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고거전'은 전통사극의 부활을 알렸다.
시청률 10%로 순항 중이던 '고거전'의 진짜 적은 거란이 아니었던가. 잘 나가던 드라마의 발목을 잡은 건 뜬근 없게도 '(대본) 작가'였다. '거란 2차 침입'을 통해 한 차례 휘몰아쳤던 '고거전'은 반환점을 돌며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나주까지 몽진을 떠났던 현종(김동준)은 그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에게 온갖 수모를 겪었던 터라 개경으로 복귀 후 '지방제도 정비'에 나섰다.
▲ KBS2 <고려거란전쟁> 관련 이미지. |
ⓒ KBS2 |
시청자 설득에 실패한 '고려거란전쟁'
18회 말미에는 강감찬과 첨예한 갈등을 빚은 현종이 화를 참지 못하고 말을 타고 나섰다가 낙마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만큼 강감찬을 신뢰하고 의지했던 현종의 좌절감을 그려내려 했던 것이었으리라. 현종의 성장스토리를 담아내고자 한 '고거전'의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엉뚱한 낙마 사고는 현종의 캐릭터를 '금쪽이'로 만들었다. 이 설정은 시청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납득을 못한 건 '고거전'의 원작 소설('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을 집필한 길승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15일, 길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현종의 지방제도 정비가 (원작에) 나오는데, 드라마처럼 심한 갈등으로 묘사되지는 않"을뿐더러 "당연히 '고려거란전쟁' 18화에 묘사된 현종의 낙마는 원작 내용 중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원작자의 불만을 제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원작에 없는 내용이 드라마에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길 작가의 말마따나 '고거전'의 작가가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는 점이다. 퓨전 사극과 달리 전통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또, 묵직함이 전통사극의 매력이라는 점에서 현종의 낙마 에피소드는 흐름을 깨는 경박함처럼 느껴졌다.
'고거전'의 전개에 큰 실망을 느낀 길 작가는 "책임감을 가지고 집필했으면" 한다며 "드라마가 삼류에서 벗어나길 기원"한다고 호소했다. 이쯤되면 '고거전'을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또, 현종에 대해서는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탄식했다. 현종이라는 인물에 매료될 준비가 되어 있던 시청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다.
현종 역을 맡은 김동준은 사극톤과 어우러지지 않는 발성과 경직된 연기로 많은 지적을 받았다. KBS 측은 연기력 논란을 빚었던 김동준에게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안기며 다소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 김동준의 연기는 중반으로 접어들며 다소 안정되었는데, 이는 강감찬 역을 맡은 최수종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번 낙마 에피소드로 또 다시 곤궁에 빠졌다.
전통 사극의 극적인 부활을 알린 '고거전'은 시청자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다. 강조 역을 맡은 이원종, 양규 역의 지승현 등의 열연이 초반 시청률 견인에 성공했고, 연기대상에 빛나는 최수종의 든든한 존재감이 힘을 불어넣고 있다. 또,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귀주 대첩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다만, 현종 캐릭터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현종의 성장 스토리'는 얼마나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현종에 가려져 강감찬의 비중이 줄어든 '고거전'은 귀주대첩을 향항 빌드업을 어떻게 해내갈 것인가. 시청자 원성에 원작자의 비판까지, '고거전'이 처한 위기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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