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세요, 시금치와 섬초는 이렇게 다릅니다

이광표 2024. 1. 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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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22] 비금도① 섬초와 대동염전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편집자말>

[이광표 기자]

신안군 비금도 가산항 선착장에 내리면 힘차게 날아오르는 독수리 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금도가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 옆엔 염전의 수차를 돌리는 염부(鹽夫)의 조형물이 있다. 비금도가 천일염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천일염전은 가산항 선착장 근처에 많다. 그러나 지금 겨울철엔 염전이 쉬고 있다. 염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는 시기는 매년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전량 서울로 팔려가는 비금도 섬초

가산항에서 조금 벗어나면 도로 좌우로 온통 초록빛 시금치밭이다. 한겨울인 지금 비금도에선 시금치가 한창이다. 비금도 시금치는 특별히 '섬초'라고 부른다. 비금도에선 1950년대부터 시금치를 재배했다.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자 비금농협은 1996년 섬초라는 브랜드로 상표등록을 했다. 영양이 풍부하고 맛도 좋은 데다 이름도 예쁜 섬초. 비금도 시금치는 이렇게 비금도의 핵심 문화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신안의 비금도는 시금치로 유명하다. 비금도 시금치는 맛과 영양이 탁월해 특별히 ‘섬초’라 부른다.
ⓒ 신안군
 
 비금도 섬초는 겨울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다른 지역 시금치보다 잎이 두껍고 더 달다. 섬초는 서울의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 신안군
 
섬초는 9월에 파종하고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한다. 섬초를 키우는 건 8할이 겨울 바닷바람이다. 비금도 밭에서 자라는 섬초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동안 보고 먹어온 내륙의 시금치와 모양새가 달랐다.

섬초는 해풍을 견디느라 땅바닥에 짝 붙어산다. 바닷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큰 냉이처럼 잎과 줄기를 널찍하게 바닥에 깔고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시금치에 비해 옆으로 퍼진 모습이다. 다른 지역의 시금치는 크고 잎사귀가 헐렁한데 비해 비금도의 시금치는 좀 작고 촘촘하다. 잎도 두껍고 색깔도 진하다.

겨울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자라는 비금도 시금치이기에 그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잎이 두껍고 넓기 때문에 한입 베어 물면 식감이 좋다. 단맛도 진하고 향도 강하다. 바닷가인 비금도의 갯밭에는 게르마늄 성분이 있는데 이러한 성분과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신선도가 늘 유지되고 당도도 높다.

국내 여러 지역의 시금치 가운데 게르마늄 성분을 함유한 것은 섬초가 유일하다. 무기질과 마그네슘, 칼슘, 철 성분도 타 지역 시금치보다 많다. 섬초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려면 국보다는 나물이나 무침으로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비금도에서 40년 넘게 섬초를 재배해온 강경순 씨. 한겨울인 요즘이 섬초 수확철이다.
ⓒ 이광표
 
비금도 도처가 초록이지만 자세히 보니 조금씩 색이 다르다. 좀 더 진한 초록이 있고 약간 연한 초록도 있다. 묵직한 초록도 있고 가벼운 초록도 있다. 열심히 섬초를 수확 중인 강경순(66)씨를 만났다.

그는 비금도에서 태어나 비금도에서만 살고 있다. "스물다섯에 결혼하고 그때부터 계속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강씨에게 시금치 색깔의 차이에 대해 물었더니 "섬초의 종자가 10여 개나 되다 보니 종자에 따라 싹이 나서 자라면 그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해주었다.

섬초는 거의 전량 서울의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으로 올라간다. 비금면사무소 근처엔 시금치 집하장이 있다. 매일 오후 4시 이곳에서 섬초를 취합해 그날 밤 배편으로 암태도와 목포로 내보낸다.

곧바로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수송돼 다음 날 야간 경매에 부친다. 개인 소비자에게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2023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으로 넘어간 것은 10kg짜리 박스 26만 개. 비금도 주민 600가구가 550ha의 면적에서 섬초를 생산하고 있다.

비금농협에서 섬초를 담당하고 있는 김대중 과장의 설명.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시금치를 경매할 때, 비금도 섬초를 먼저 경매하고 다른 지역 시금치의 경매가 이뤄집니다." 섬초가 가장 인기가 높고 반응이 좋다는 말이다. 김 과장은 "우리 섬초가 가락동 시장에서 항상 최고 대우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섬초는 눈을 맞으면 더 달다고 한다. 시금치의 섬 비금도에 왔으니 그 섬초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비금면사무소 근처의 인기 맛집 '보릿고개'에서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섬초 무침이 빠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얼마 전 눈이 내려 오늘 무친 섬초는 더 달짝지근할 것"이라고 했다. 사장님 말대로, 섬초 무침을 먹어보니 묵직하고 달짝지근하다.

씹을수록 달짝지근해 그 맛이 오래 간다. 평소 먹었던 시금치보다 잎이 두껍다는 것도 금방 느낄 수 있다. 겨울철 눈을 맞으면 단맛이 더 강해지는 섬초. 그래서 섬초는 겨울철에 더더욱 인기다. 김대중 과장은 "수확하고 일주일쯤 지나도 물에 담그면 섬초가 다시 살아난다"고 자랑한다.

국가등록문화재 대동염전

비금도에서 천일염을 빼놓을 수 없다. 비금도는 호남지역 최초로 천일염전이 조성된 지역. 그 주역이 박삼만이다. 박삼만은 청년 시절 일본인이 운영하던 평남 용강군의 귀성염전에서 천일제염법을 배웠다.

광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박삼만은 1946년 손봉훈 등과 함께 비금도 수림리 앞의 갯벌을 막아 시험적으로 천일염전을 조성했고 그해 6월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했다. 이 염전을 호남 시조염전이라고 한다. 가산항에 세워놓은 수차 돌리는 염부 조형물은 바로 박삼만을 모델로 한 것이다.
 
 비금도 가산항에 세워져 있는 ‘수차 돌리는 박삼만’ 조형물. 박삼만은 1946년 비금도에서 호남지역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인물이다.
ⓒ 이광표
  
 비금도 대동염전 소금창고. 1948년 조성된 대동염전은 200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신안군
 
시조염전이 성공하자 1948년 비금도 주민 450가구가 염전조합을 결성했고 비금도와 떨어져있던 가산도와 사랑도를 간척해 염전을 조성했다. 그것이 바로 비금도의 대동염전이다. 대동염전은 증도의 태평염전과 함께 신안을 대표하는 대규모 천일염전으로, 모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동염전은 신안 지역 염전의 성립과 발전의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핵심은 비금도 주민들이 직접 염전조합을 결성했고 기술자양성소를 운영했다는 사실이다. 기술자 양성소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신안의 인근 섬 지역과 무안, 완도, 해남, 영광, 부안, 군산 등지로 진출해 천일염전 조성 공사에 참여함으로써 광복 후 우리나라 염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신안 지역을 넘어 인근 지역공동체의 경제 활동과 생활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염전이 쉬고 있지만 3월이 되면 다시 염전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수리차가 돌아갈 것이다. 투명하고 뽀얀 소금을 가득 실은 수레가 소금 창고를 분주히 드나들 것이다.

영원한 사람을 꿈꾸는 곳, 하트 해변

비금도에는 멋진 해변이 많다. 원평 해변과 명사십리 해변은 서로 붙어 있다. 명사십리 해변은 4km에 달하는 모래밭이 일품이다. 명사십리 해변은 차량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모래 입자가 곱고 단단하다.

바닷가 백사장의 드라이브는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이곳에선 풍력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바로 옆엔 자전거길이 있는데 바닷가와 자전거 조형물,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지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비금도를 대표하는 명사십리 해변. 곱고 단단한 모래밭이 4km 이상 펼쳐져 있다.
ⓒ 신안군
 
최근 많이 화제가 되는 곳은 비금도 서쪽 해안의 하트 해변이다. 하트 해변의 원래 이름은 하누넘 해변. 이 해변은 선왕산을 배경으로 한다. 비금도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산이 있다. 그림산과 선왕산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모두 바위가 두드러져 매력적인 풍광을 뽐낸다.
비금도 최고봉(255m)인 선왕산은 서쪽 해안과 닿아 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선왕산의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탁 트인 하누넘 해변이 아래로 펼쳐진다. 하누넘은 하늘과 바다만 보이는 바닷가라는 뜻, 거센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언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금도 선왕산의 해안도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하트 해변. 이곳에 낭만적인 분위기의 하트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하트 해변과 해안도로의 풍광이 압권이다.
ⓒ 이광표
능선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해안선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해안이 하트 모양이 된 것인데, 참으로 절묘하다. 그래서 요즘엔 하누넘 해변보다 하트 해변이라 부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조망 지점엔 젊고 싱그러운 분위기의 하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남녀가 입맞춤하는 모습을 하트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이곳이 널리 알려지면서 '연인이나 부부가 하누넘에 오면 헤어지지 않고 영원히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쌓여가고 있다.

하트 해변의 해안도로는 길이 좁고 매우 구불구불하다.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 원평 해변이나 명사십리 해변보다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그곳에 다다르면 압도적인 풍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비금도 지당리 어느 골목의 돌담. 비금도에 가면 내촌마을을 비롯해 곳곳에서 오래된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 이광표
 
하트해변 가까운 곳의 선왕산 남쪽에 내촌마을이 있다. 이곳엔 오래된 돌담들이 선왕산을 배경으로 골목골목 모여 있다. 3km에 이르는 돌담이 세월의 멋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이 돌담은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촌마을뿐만 아니라 비금도 곳곳에서 이런 돌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재미도 비금도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강제윤, 《신안》, 21세기북스, 2020, 고상희, 〈신안 섬초(시금치)의 항산화 효과와 분말 첨가 식품의 품질 특성〉, 순천대대학원 박사논문, 2014 김민수, 《대한민국 100섬 여행-서해편》, 파람북, 2022 농촌진흥청, 《섬초(시금치) 장기 저장유통 및 상품화 기술개발》, 2019 최성환, 〈광복 이후 비금도 대동염전 개발과정과 사회적 가치〉, 《신안문화》 27호, 신안문화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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