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초만에 경호원이...대통령실 국회의원 제압 영상, 분석해보니
[임병도 기자]
▲ '과잉경호' 논란 대통령실 제공 영상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 쫓겨나 논란인 가운데, 이날 오후 대통령실이 보도에 참고하라며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제공했다. ⓒ 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 경호원들이 현직 국회의원의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쫓아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에 참석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대통령과 악수하는 도중에 "국정기조 바꿔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제압당한 후 행사장 밖으로 퇴장당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호원이 강 의원에게) 계속해서 손을 놓으라고 경고했고, 대통령이 지나간 뒤에도 계속 고성을 지르면서 행사를 방해하는 상황"이었다며 "경호상의 위해 행위라고 판단될 만한 상황이라 강 의원을 퇴장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은 보도에 참고하라며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풀(full) 영상을 기자들에게 제공했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초 단위로 나눠봤다.
▲ 대통령실이 제공한 영상을 초단위로 나눈 장면. 강 의원이 악수하고 제압을 시작할 때까지는 불과 10초 미만이었다 |
ⓒ 임병도 |
대통령실은 강 의원이 계속해서 손을 잡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상 속 7초가 지날 무렵 이미 윤 대통령이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한다. 강 의원이 윤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있던 시간은 길게 잡아도 5초에 불과한 셈이다. 12초가 되자 윤 대통령은 완전히 강 의원과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고, 경호원들은 강 의원을 강제로 제압하며 입을 막기 시작했다.
경호원 입장에서는 불과 수 초의 짧은 시간이라도 대통령이 위해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강성희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이다. 낯선 사람이나 일반 시민도 아닌 현직 국회의원이 대통령과 5초 정도 악수를 한 걸 두고 '위해 행위'라고 봤다면, 이건 굉장히 지나친 판단이라 볼 수 있다.
강 의원이 대통령이 지나간 뒤에도 계속 고성을 지르면서 행사를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주장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임오경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라고 말한 것이 대화 도중에 끌려 나갈 일입니까?"라며 "이제 무서워서 누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대통령에게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강 의원이 말을 하던 때는 윤 대통령이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행사는 시작 전이었다. 경호처의 해명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18일 전주시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악수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해 끌려나가고 있다.진보당측은 "강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라는 말을 건넨 순간 경호원들이 제지했다"고 주장했다. |
ⓒ 연합뉴스 |
'경호는 폭력이 아니다'라는 말은 1988년 4월 15일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이다. 당시 전두환씨의 경호원들이 취재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조선일보>가 이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우리는 언론의 습성(취재)이 너무 지나치다 보면 남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수도 있음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그러한 전제하에서라도 권력자의 경호원들이 걸핏하면 필요이상의 과잉진압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다 못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언동을 서슴지 않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경호원들의 과잉 경호는 어느 시기나 있었다. 1988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당시 노태우 대통령도 한국 측 경호원들이 말레이시아 각료를 거칠게 대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1988년 당시 소련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를 향해 모스크바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기자들은 그 모습을 취재했다. 그러자 KGB(국가보호위원회)는 취재진을 폭행했고, 낸시 여사는 백악관 출입 기자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 보호했다.
1992년 14대 국회 당시 청와대 경호실은 노태우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참석을 위해 국회의사당 주요 출입구에 검색대를 설치했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의 주인이 누구냐, 주인이 제집에 들어가는데 몸수색을 한단 말이냐"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 2020년 7월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아무개씨가 구두를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정아무개씨가 던진 구두를 들고 있는 모습 |
ⓒ 임병도 |
일각에서는 강 의원을 제압하기 보다는 윤 대통령을 다른 자리로 빠르게 이동시켜야 했다고 지적한다. 또 만약 그 순간 경호를 강화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경호원들이 강 의원의 입을 강제로 막고 사지를 들어 옮기기 보다는 정중하게 자리에 앉을 것을 요구하거나 경호원들이 강 의원을 에워싸는 등 세밀한 대응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자는 2020년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이 투척될 때 현장에 있었다. 정아무개씨 옆에 서 있다가 구두를 던지는 모습과 문 대통령이 놀란 표정, 경호원들이 제압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당시 경호원들은 정 아무개씨와 기자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도 정씨만 제압했다. 다른 경호원들은 재빠르게 문 대통령을 차에 태우고 급히 국회의사당을 떠났다.
현직 대통령에게 신발이 투척됐지만 다행히 문 대통령은 맞지 않았고 경호원들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정아무개씨의 신발 투척은 (공무 집행 방해 혐의) 무죄를 받았고, 대법원도 '대통령의 직무 집행을 방해할 정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에서는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이후 경호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도 아니고 비표(대통령 행사 참석자들은 리본 형식의 비표와 이름표 등을 착용해야 입장이 가능하다)를 착용한 현직 국회의원을 강제로 제압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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