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뮤지컬 여제 옥주현의 21세기 댄버스
Q : 〈레베카〉의 ‘댄버스’와 함께한 지도 벌써 10년이에요. 2013년의 ‘옥댄’과 비교하면 뭐가 가장 달라졌나요?
A : 두려움이 커졌어요. 관객분들이 〈레베카〉에 대한 사랑을 크게 보내주실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댄버스 역할을 하는 다른 배우분들도 다 같은 마음이더라고요. 관객분들께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 계시지만 배우분들은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가 느껴진다고 이야기해요. 〈레베카〉를 보러 오신 관객 모두의 강력한 힘이죠.
Q : ‘옥댄’이 10년 동안 사랑한 ‘레베카’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A : 레베카에 대한 무성한 소문에서 답을 찾으실 수 있어요. 특히 앙상블이 ‘나’라는 인물에 대해 합창하며 이야기하는 신이 있어요. ‘막심’이 레베카와 비슷한 스타일의 새 안주인을 데려왔을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다른 ‘나’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죠. 그 외에 레베카를 묘사하는 앙상블의 합창, 댄버스의 노랫말 등에서 유추할 수 있죠. 여러분이 보셨던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그림체로 상상하시면 더 가깝게 유추하실 수 있습니다.(웃음)
Q :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듣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제가 상상한 레베카와 너무 다르면 환상이 깨지니까요.(웃음)
A : 해답을 주지 않는 것이 〈레베카〉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기도 해요. 극 자체가 미스터리 스릴러다 보니 N차 관람 시 훨씬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레베카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처음 볼 때는 놓쳤던 장면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어요. 그러니 〈레베카〉를 보러 올 때는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한 번에 다 캐실 순 없을 테니 N차 관람을 추천해요.(웃음)
Q : 관객은 왜 옥주현의 〈레베카〉를 좋아할까요?
A : 제가 직접 그 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와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각각 다른 날 저에게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주현 너는 정말 안됐다, 객석에서 옥주현의 〈레베카〉를 볼 수 없으니까”라고. 정말 극찬이라 감사하죠.(웃음) 당시에는 ‘내가 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러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Q : 댄버스를 열연하며 수식어도 많이 생겼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뭔가요?
A : 가장 끌리는 건 ‘믿보배’?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딱 제가 추구하는 바예요. 저는 사실 ‘난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나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려고 하죠. 그래서 제안받은 캐릭터와 매칭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과감하게 포기해요.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나를 봤을 때 ‘믿고 보길 잘했어’라고 생각할까란 지점을 가장 많이 고민해요.
Q : 그 신념 때문인가요? 10년 만에 참여하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혁명가 ‘마그리드’로 돌아오죠. 다른 배역으로 극에 참여하는 소감도 궁금합니다.
A :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돌아와달라는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았는데, 더 이상 제가 잘 입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것 같았어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배경이나 성향이 지금의 저와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물론 예전의 저랑은 어울렸었죠. 지금은 마리 앙투아네트 특유의 해맑음, 영락없는 막내 공주님 같은 모습보다는 혁명가 마그리드 아르노로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초연을 하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로 열연한 김소향 배우가 너무나 작품을 잘 일궈왔더라고요. 워낙 설계적이고 캐릭터 디자인을 잘하는 멋진 배우예요. 그런 배우와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김소향 배우가 다져온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성에 저를 입장시켜준 것이 감사하죠.(웃음)
Q : 두 분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하러 꼭 공연을 보러 가야겠네요.(웃음) 댄버스와 옥주현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A : ‘집착’이라는 키워드가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지금까지 이 직업을 연명해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호기심에 대한 집착이거든요.(웃음) 제가 평소에는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에 늘 쓰여 있던 말이 “주위가 산만하며”였거든요.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달라요. 라디오 DJ를 4년 넘게 진행한 것도 그렇고, 이렇게 오랫동안 뮤지컬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Q : 이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게 느껴져요. 옥주현에게 뮤지컬은 어떤 의미인가요?
A :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예요.(웃음) 저에게 뮤지컬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을 선물받는 것.
Q : 관객 입장에서 저도 그랬어요. 옥주현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A : 어우, 정말요?(웃음) 저에게는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네요. 천 명 이상의 사람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오셨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감동이죠.
Q : 10년 넘게 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2024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나요?
A : 가장 듣기 좋은 말이 그거예요. ‘여전하다’.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죠. 올해도 그 여전함을 위해 계속 저 자신을 돌봐야겠죠. 에너지가 늘 장전이 돼 있어야 여전할 수 있는 거잖아요.
Q : 절대 잊지 못하는 무대가 있다면요?
A : 거의 모든 무대. 저에게는 전부 생생해요. 유난히 건조했던 날, 기침하는 사람이 유독 많았던 날, 지연 관객이 많았던 날, 환호성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던 날 등등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요.
Q : 뮤지컬 배우 외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또 있나요?
A : 만약 제가 농부가 되고 싶다면 그건 도전이겠죠? 전혀 다른 분야니까요. ‘도전’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하고 싶은 ‘의외의 장르’는 생각나지 않네요. 대신 제가 가진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후배를 양성한다거나 뮤지컬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눠주는 일들이요. 그 밖에 자기 관리를 하며 열심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Q : 어떤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A : 롤모델이 있다면 윤여정 선생님이에요. 함께 작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작품이나 인터뷰를 볼 때마다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분은 어떤 시간을 보낸 사람일까? 감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 배우,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메릴 스트립! 어떻게 보면 배우는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대본에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어렴풋이 나와 있으니 나머지를 묘사해내는 건 배우의 몫이죠.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보면 유럽에 있는 석상 같아요. 돌로 비단을 표현한. 저도 그런 정교함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다듬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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