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오카야마에서 바다를 따라 산요 본선의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빠른 신칸센 대신 천천히 가는 보통열차를 선택한 덕에, 히로시마까지는 세 시간 넘게 소요됐습니다.
히로시마는 예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히로시마시의 인구가 100만을 넘어, 일본의 10대 대도시로 꼽히죠. 오타가와(太田川)라는 강 하구의 넓은 평야를 낀 도시입니다.
▲ 히로시마의 밤 |
ⓒ Widerstand |
2차대전 말기, 일본에게는 이미 전쟁을 계속할 만한 전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일본 본토에도 막대한 공습을 가하고 있었고, 도쿄는 고층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죠. 군사력도 궤멸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일본에 조건 없는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응하지 않았죠. 어떻게든 미국을 괴롭혀 천황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목표가 군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국민 몇의 목숨이 사라지든,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 군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국은 예상 외의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저항하다 방법이 없으면 '옥쇄(玉碎)'한다는 일본군의 전투 방식은 미국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 히로시마 |
ⓒ Widerstand |
이 가운데 일본의 정신적 수도에 가까운 교토가 파괴될 경우, 전후 민심 수습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을 우려해 교토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신 기타큐슈가 표적이 되었고, 이는 당일 기상 문제로 나가사키로 변경되었죠.
히로시마에는 8월 6일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됐습니다. 사흘 뒤 '팻 맨'이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죠.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핵무기를 실전에 투입한 사례입니다.
▲ 폐허가 된 히로시마 물산장려관 (원폭 돔) |
ⓒ Widerstand |
전쟁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히로시마에는 폐허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는 바닥에서부터 재건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1949년 '히로시마 평화기념도시 건설법'이 통과됩니다. 중앙정부의 재원을 투입해 히로시마를 재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히로시마의 부흥이 시작되죠.
▲ 히로시마 성 |
ⓒ Widerstand |
히로시마의 추모비에는 많은 국가의 정상이 다녀갔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히로시마를 찾았고, 그 적성국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도 히로시마에 방문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히로시마에 방문했죠.
일본 제국은 식민 제국이었습니다. 타국의 주권을 침탈해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후기에는 전쟁범죄를 벌이며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그런 역사를 가진 일본이, 이제는 '평화'를 앞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식민지 경험을 가진 우리에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원자폭탄 희생자 추모비 |
ⓒ Widerstand |
우리가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비극을 생각하고 그 피해자에 추모의 뜻을 건네는 것은, 과거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규탄하는 것과 병립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병립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히로시마의 평화는, 그 비극의 길에 다시 들어서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다짐입니다. 우리가 굳이 그 의지를 폄하하며, 평화의 범위를 축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후 일본을 지배한 '평화'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막고, 국가 권력의 횡포를 규탄하고, 군대를 포기한 일본의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단어였습니다.
▲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
ⓒ Widerstand |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사망한 조선인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당시 사망자 가운데 최대 2만 명이 조선인이었다고 보기도 하죠. 그만큼 조선인의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이곳에서 희생당한 조선인의 영령이야말로, 우리가 히로시마라는 '평화의 도시'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전쟁도 착취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이웃 국가의 시민들과 함께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히로시마의 도심은 재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무너진 돔으로 남아 서 있습니다. 그 과거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전쟁의 망령이 부활할 때,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정부가 세워질 때, 히로시마의 비극은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를 경고하기 위해, 히로시마의 무너진 돔은 오늘도 시민들의 곁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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