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부자 '채권', 신흥부자 '비상장주식' 꽂혔다[슈퍼리치 투자]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순조롭지 않았던 지난해 고액 자산가들은 채권 투자에 열중했다.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응해 통화 분산 전략을 통해 달러투자와 채권투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기도 했다. 이차전지주가 폭등하며 다수가 성장주에 베팅할 때, 이들은 보유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지키는 데 집중하는 '안정적인 투자 방식'을 고수했다.
조혜진 NH투자증권 프리미어 블루(Premier Blue) 강남센터 이사는 1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고액 자산가들이 행했던 채권투자가 매매차익을 추구하는 전략이었다면, 올해는 매월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월이표 채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고액 자산가의 채권투자 동향에 관해 설명했다. 전문 프라이빗뱅커인(PB) 조 이사는 현재 NH투자증권 프리미어 블루 강남센터에서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조언을 하고 있다.
조 이사는 지난해 주식이나 펀드보다는 채권영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보유자산이 많을수록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면서 가지고 있는 현금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채권투자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상반기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채권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저점 매수 기회를 노린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면, 하반기엔 시장 금리 인상 기조가 막바지에 이르자 매매차익을 노린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린 자산가들이 늘어난 것이다.
조 이사는 "고금리 기조에서 이제 기준금리가 떨어질 테니 채권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판단에 일반투자자들이 채권 매수를 고민하는 시점보다 한발 빨리 움직이는 게 고액 자산가들"이라며 "조급하게 자산을 투자할 필요가 없으므로 지난해 장기국채를 주로 담았다"고 전했다.
채권수익은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으로 나뉜다. 장기채는 만기까지 보유 기간이 길어 가격 변동 폭이 큰 편이지만 지난해 금리 상승 국면에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올해 금리가 하락세로 전환해 채권 가격이 오르면 장기채 투자를 통해 매매차익을 노릴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난해엔 주로 매매차익을 노린 투자가 이뤄졌다면 올해는 매달 이자를 받는 방식의 월이표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했다. 조 이사는 "채권 보유 비중에 대한 변화는 크게 주지 않되, 매달 고정 이자로 높은 수익을 주는 고(高)쿠폰 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자산가들은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를 분산하는 투자도 빼놓지 않고 한다고 했다. 조 이사는 "작년에 일본에 상장된 미국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엔화와 미국채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채를 보유하면 달러 가치 하락을 감안해야 하는데, 일본의 미국채 ETF를 매수하면 엔화가치 상승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코인, 주식으로 부를 급격히 늘린 신흥부자들의 투자 전략은 또 달랐다. 이들은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전통 자산가들보다 조금 더 공격적인 투자방식을 취했다. 조 이사는 "신흥부자들은 다소 리스크가 있는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주식과 병행해 비상장주식이나 메자닌 투자를 주로 한다"고 말했다.
메자닌 투자는 회사채 조달이 어려운 신용등급이 낮은 코스닥 기업이 주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 단계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신흥부자들은 정해진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전환사채(CB)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말 산타랠리가 지속되면서 코스피는 2600선을 터치했지만 올 초부터 시장의 분위기가 급속히 식었다. 자산가들은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편승해 매수 버튼을 누르기보다 느긋하게 시장을 관망하는 편이라고 했다.
조 이사는 "시장을 전망하기보다는 상황에 대응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을 사기보다 차라리 신규 매수를 하지 않거나 장기로 보유할 수 있는 상품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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