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등록금 동결하자는데, 학생이 반대…"좋은 교육 받고싶다"
"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한다. 학생들도 좋은 교수님들께 우수한 교육 환경에서 수업을 받고 싶은 심정이다. "
지난달 28일 서강대 2024학년도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회의에서 나온 한 학생 대표의 발언이다. 서강대가 최근 공개한 등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학교 측은 연평균 800만원의 학부 등록금을 동결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9명의 위원 중 6명이 찬성해 원안이 가결됐지만, 3명은 동결을 반대했다. 이 중에는 학생 대표가 던진 1표도 포함됐다.
1173만 원인 대학원 등록금을 4% 인상하자는 안에는 9명이 전원 찬성했다. 학생 대표도 “현 대학원 등록금은 비싼 수준은 아니다. 4% 인상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찬성표를 던졌다.
일부 학생위원 “학교 재정 고민에 공감”
학생들은 과거처럼 등록금 인상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돌아올 혜택을 꼼꼼히 따지는 모습이다. 반면 지난해 중순까지 인상론이 대세였던 학교들은 동결로 선회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서울대 등심위 1차 회의에서 한 학생 대표는 “등록금 동결을 제안한다”면서도 “학교 측 주장대로 자체 재원 마련은 당연히 시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주대 등심위에서는 학교 측 위원이 “외국인 유학생의 등록금은 별도로 인상하겠다”고 하자 한 학생 위원이 “대학의 상황과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는 사유들을 잘 알려주면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경북의 한 사립대 등심위에서도 학생 위원이 “대학의 재정적인 고민에 공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15년 등록금 동결에 “도와달라 요청 쉽게 거절 못 해”
한때 대학가에서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생 여론이 거셌다. 등록금 인상률이 10.4%(국·공립대), 7.1%(사립대, 2008년 기준)에 달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대학생 단체인 등록금네트워크 등이 정부에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등록금이 15년째 동결되면서 대학 내 기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부총장은 “등록금 동결 정책 시행 초기만 해도 등심위에서 인상 얘기를 꺼내면 학생 대표가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며 “지금은 학생들이 학교가 어려워진 상황을 알다 보니 ‘(인상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등심위원인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회 대표는 “학생 대표가 어떻게 등록금을 올리라고 말하겠냐”면서도 “학교가 정 인상이 필요하다면 그 재원이 학생들을 위해서 어떻게 쓰일지 충분히 설득시키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실제로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도 있다. 지난해 동아대는 등록금 인상분 50억 원을 시설 재투자에 쓰겠다고 약속해 13년 만에 처음으로 등록금을 인상했다. 학부 등록금 3.95%, 대학원 등록금 3.86%를 인상하는 안은 등심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올리더라도 화장실 좀 고쳐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강의실 빔프로젝터는 수리만 반복해 화질이 점점 떨어지고, 공대엔 실험 장비나 기자재가 낡았지만, 최신형으로 들여올 엄두를 못 냈었다”고 말했다.
인상 원하면서도 동결로 ‘유턴’하는 대학 왜?
그런데도 많은 대학은 여전히 등록금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의 거점국립대 10곳 중 7곳은 학부 등록금 동결을 확정 지었고, 3곳은 학교 측이 등심위에 동결안을 제시한 상태다. 연세대, 경희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국민대 등 주요 사립대도 동결을 결정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교육부가 동결을 적극 권고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달 말 전국 대학에 등록금 동결 협조 공문을 보냈다. 지난해 글로컬대학 사업에 탈락한 한 영남권 대학의 기획처장은 “등록금을 올려도 글로컬사업 등 각종 재정지원 사업 정성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고 탈락하면 결과적으로 대학이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은 지난달 1차 등심위 회의에서 2% 인상안을 제시했다가, 2차 회의에서 돌연 동결을 결정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의 협조 요청을 고려한 것은 맞다”라면서도 “학생들의 요구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등록금 동결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재정지원 사업은 국가장학금 2유형 뿐이고 다른 사업들은 등록금 인상 여부와 무관하다”며 “교육부도 고등교육 예산을 늘리고 예산 집행의 자율성도 확대하면서 대학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이가람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부 성폭행에 중2 때 출산…언니는 "입 열면 죽이겠다" 협박 | 중앙일보
- 기억력 평균 3배 늘려준다…치매 막는 ‘뇌 청소’ 수면법 | 중앙일보
- 아내가 차에 숨긴 샤넬 백, 직장 상사와의 밀회 대가였다 [탐정의 모든 것] | 중앙일보
- 영탁이 모델료 150억 요구?…막걸리社 대표에 징역형 선고 이유 | 중앙일보
- “서울 지하철 보라, 엄청나다”… AI 구루가 찾은 ‘한국의 무기’ | 중앙일보
- 박수홍, 친형 상대 피해청구액 확대…116억→198억 올린 까닭 | 중앙일보
- [단독]'주4일 야근' 판사의 돌연사…"사무실 보존하라" 고법 지시 | 중앙일보
- "그래서 애 안 낳는 거 아닌데"…한동훈·이재명 대책, MZ 씁쓸 [view] | 중앙일보
- 9일 80시간 일하고 10일째 쉰다…포스코 '격주 주4일제' 도입 | 중앙일보
- 바이크로 쫓고 아파트 잠복…정은지 괴롭힌 50대女 끔찍 문자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