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자세는 뭘까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는 것
올해는 의자를 멀리해보자
얼마 전 지역 인재개발원으로 강의하러 갔을 때다. 보통은 길어도 1시간30분 내로 다 마치기 때문에 중간에 쉴 일이 없다. 이번에는 특별히 세 시간짜리 강의였고, 학교 수업처럼 50분마다 차임벨이 울린다고 했다. 말하는 데 몰입하느라 중간에 시계를 잘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첫 번째 벨이 울렸고, 강단에서 내려와 문을 나서면서 돌아봤다.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들보다 그대로 앉아 있는 쪽이 더 많았다.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눈을 붙이거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금세 또 강의가 시작될 텐데 자리에 앉은 채로 어떻게 계속 버틸 심산인지 안타까웠다. 내 귀에는 그들의 허리와 척추와 온몸의 관절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긴 요즘엔 의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뭐 따지고 보면 남의 일만도 아니다. 그중 대표적인 죄수가 나였으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한답시고 책상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다못해 입시 보기 전 막바지에는 독서실을 다니면서 잠까지도 책상에 엎드려 잔 적이 많다. 세상은 한목소리로 자지 말고 밤새 앉아서 공부해야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위협했다.
대학에 가니 도서관 자리를 차지하려고 전쟁이 벌어졌다. 자주 자리를 비우면 여기저기 옮기는 ‘메뚜기’들이 침범하므로 될 수 있으면 오래 앉아 있었다. 게다가 선배들과 세미나니 토론이니 모이는 자리가 많았는데, 한번 시작하면 그런 마라톤이 또 없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에서 때로는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다리가 저리도록 움직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필 출판 편집자란 직업을 택해 의자와는 더욱더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한번 원고 읽기에 몰입하거나 교정지 앞에 앉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마치 의자에 접착제를 발라 놓기라도 한 듯,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조금만조금만’ 하면서 버티곤 했다. 그러니 허리는 비뚤어지고 다리는 약하고 배는 나오고 목디스크에다 방광염까지 앓는 동료가 하나둘 생겨났다.
계속 앉아만 있으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의자에 앉으면 서 있기보다 훨씬 편안하니까. 일단 몸이 그 자세에 익숙해지면 우리 뇌는 거기에 적응해서 일어서기를 거부한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앉아서도 얼마든지 대부분의 일과 공부와 오락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마법의 기계가 생겼다. 요즘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디든 자리만 생기면 앉으려고 든다. 그래야 두 손으로 기계를 쥐고 맘껏 온라인 세상을 누빌 수 있으니까.
운동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가 그동안 내 몸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깨달았다. 퇴직해서 집에서 일하게 되자마자 거금을 들여 ‘서서 일하는 시스템’으로 작업 환경을 바꿨다. 지금까지 출간한 네 권의 책을 모두 선 채로 썼다는 말이다.
KTX나 비행기를 탈 때는 반드시 통로 쪽 좌석을 예매한다. 귀찮더라도 한 시간에 한 번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온다. 작가가 앉아 있는 엉덩이 힘으로만 책을 썼다가는 조만간 몸 어딘가 탈이 나리라. 비단 작가뿐이겠는가.
어? 그런 나도 최근 뱃살이 찌고 몸무게가 늘어 심히 신경이 쓰였다.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주범은 의자와 배구였다. 배구를 좋아해서 겨울 시즌이 되면 저녁 먹고 나자마자 경기를 시청한다. 마사지가 되는 안락의자에 앉아 끝날 때까지 두어 시간 넘게 일어날 줄 몰랐다. 얼마나 편안한지 거기에 누워 잠들 때도 있었다. 정신 차리고 짬짬이 일어서서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스트레칭을 하니, 아니나 달라 슬그머니 배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자세는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더 나쁜 자세는 오랫동안 앉아 있기다. 거창하게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특별히 운동하려 애쓰지 말자. 50분 몰입해 앉아 있다가도 10분 일어나 바람을 쐬든 움직이면 그만큼 운동이 된다. 새해에는 의자를 멀리하고 일어서서 몸을 자주 움직여보자.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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