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차별에 대하여

2024. 1. 1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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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모든 시대에 건강한 양심을 가진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차별은 내가 타인과 다른 타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그들의 동일한 땀에 동등한 보상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과 다른 타인의 차별은 자신을 타인보다 더 사랑하는 차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너보다 나를 더 위하는 차별 때문에 나에게 무익한 타인보다 나에게 유익한 타인을 편애하고, 나를 위하는 너보다 나를 더 위하는 다른 너를 더 편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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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차별은 모든 시대에 건강한 양심을 가진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차별은 내가 타인과 다른 타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그들의 동일한 땀에 동등한 보상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합당한 근거 없이 타인과 다른 타인을 구별하여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차별의 현상이지 차별의 근원은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차별의 근원은 타인과 다른 타인 사이의 차별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 사이의 차별에 있습니다.

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타인보다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타인의 유익보다 자신의 유익을 더 추구하는 것은 차별의 죄입니다. 타인의 행복과 기쁨과 만족보다 자신의 것들을 더 추구하는 것도 차별하는 것입니다. 타인과 다른 타인의 차별은 자신을 타인보다 더 사랑하는 차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너보다 나를 더 위하는 차별 때문에 나에게 무익한 타인보다 나에게 유익한 타인을 편애하고, 나를 위하는 너보다 나를 더 위하는 다른 너를 더 편애하는 것입니다. 차별의 해결은 현상이 아니라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근원적인 차별의 해결책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를 나처럼 사랑하는 것은 차별 해결의 하한선일 뿐이고, 상한선은 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별의 해법은 이미 태초부터 인간의 공동체에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부여된 인류 최고의 사회적인 질서는 아담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타인과 자신은 차별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뼈와 뼈 중의 뼈, 살과 살 중의 살을 분리하면 죽습니다. 태초의 사회, 태초의 공동체, 태초의 인류는 나와 너를 나누는 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랑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고백에 따르면 하와라는 이웃을 그는 자신처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사랑한 것처럼 보입니다. 태초의 공동체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것이 본성에 부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인류를 조성하신 신의 뜻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담과 하와가 비록 고백은 그렇게 했지만, 죄로 말미암아 그 고백을 행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방식으로 나와 너의 차별을 제거하여 차별 없는 태초의 공동체를 회복하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관객처럼 보고 감탄하고 마는 관상용이 아니라 우리도 따라야 할 차별 금지의 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고도 내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무차별의 실천을 주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주저함의 배후에는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면 손해를 본다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 의식이 차별하지 않으려는 실천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을 얻습니다. 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나의 자아를 넓히는 것입니다. 내가 많아지고 내가 넓어지고 내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를 덜 사랑하면 너는 아직 내가 아닙니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해야 너는 비로소 나입니다. 그래서 자아가 커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하던 존재의 국경선을 허물어야 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더 위대해진 자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성장의 비용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최고의 공동체로 만들고 우리 개개인이 인격의 거인과 위대한 인생이 되는 비결은 차별의 극복에 있습니다. 상식과는 달리 너를 나보다 더 사랑함에 있습니다.

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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