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림택권 (4) 6·25전쟁 발발… 인민군복 입은 친구 찾아와 “택권 동무”

임보혁 2024. 1. 1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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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황촌교회 담임 장형일 목사님은 훗날 6·25전쟁이 발발한 뒤 인민군에게 붙잡혀 가 결국 총살당하셨다고 들었다.

의아함으로 교실에 들어갔더니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쇼날'(내셔널)이라고 적힌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우며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대략 '남조선 이승만 괴뢰 정부가 북진해 전쟁을 벌여와 우리 군대가 반격해 전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쟁이 난 후 우리 동네에 놓인 게시판에는 인민군의 위치가 시시각각 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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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들어가면서 공산주의 세뇌 교육
미리 전쟁 준비 마치고 전쟁 벌여놓고
라디오서 북침이라며 가짜 소식 전해
림택권(왼쪽) 목사가 1952년 미군 351부대 근무하던 당시 전우와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유년기의 황촌교회 담임 장형일 목사님은 훗날 6·25전쟁이 발발한 뒤 인민군에게 붙잡혀 가 결국 총살당하셨다고 들었다. 장 목사님께는 내 또래 딸이 하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 친형님은 같이 교회를 출석하던 또래 집사님들과 함께 인민군에 총살당한 이들이 한 무더기로 놓인 시체 더미에서 장 목사님의 시신을 찾아 임시로라도 묘를 조성하셨다고 한다.

6·25전쟁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발발했다. 앞서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학제가 개편됐다. 지금의 초등학교였던 인민학교가 6년제에서 5년제로 바뀌었다. 그래서 한 학년 아래 동생들과 같이 졸업했다. 동생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우린 바로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갔다. 우리보다 앞선 선배들은 3학년이 됐다. 당시 북한은 학기 시작을 서양식으로 9월에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난 소련(현 러시아) 말과 함께 그들의 체계를 배웠다.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혁명인 ‘10월 혁명’ 이른바 볼셰비키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책을 마치 성경처럼 배웠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때 배웠다. 어린 나이부터 공산주의 사상 세뇌 교육이 시작된 셈이다.

당시 북한은 전국의 학교가 똑같은 문제를 갖고 시험을 치렀다. 학기 말이 되면 보통 시험에 나올 만한 예제가 100개 정도 추려진다. 학생들은 이를 갖고 공부하다가 시험일이 되면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순서에 따라 앞으로 나가 시험문제가 든 봉투 하나를 받아온다. 그 봉투에는 모두 세 개의 시험 문제가 있는데, 그중 두 문제는 앞선 예제에서 나온다. 하지만 나머지 한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다. 결국 세 번째 문제에서 점수가 갈리는 셈인데 교육의 평준화와 다름없는 셈이다.

당시 난 벽보 주필이라고 벽보에 글씨를 쓰는 업무도 맡을 정도로 공부를 곧잘 했다. 시험이 끝나면 빨리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놀고 싶었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시험을 마치면 꼭 행사 명목으로 인근 계곡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활동을 시켰다. 교회나 다른 곳에서 따로 모이지 못하게 막았던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등교했는데 학교 인근 향교에 인민군 한 대대가 주둔해있는 모습을 봤다. 의아함으로 교실에 들어갔더니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쇼날’(내셔널)이라고 적힌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우며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대략 ‘남조선 이승만 괴뢰 정부가 북진해 전쟁을 벌여와 우리 군대가 반격해 전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듣고 다시 향교 쪽을 보니 이미 군대는 출동하고 난 뒤였다. 북한이 이미 전쟁 준비를 미리 다하고 있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렇게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난 후 우리 동네에 놓인 게시판에는 인민군의 위치가 시시각각 표기됐다. 한반도 지도 위에 인민군이 진군해 점령한 곳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며칠 후 동갑내기 친구 한 녀석이 인민군복을 입고 우리 집을 찾았다. 그 친구는 대뜸 날 “택권 동무!”하고 불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택권아” 하고 부르던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군사훈련을 받은 거였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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