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 위성정당 할 거면 직접 하라
4년 전 현장 기자들의 흥미로운 취재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 갔다가 인근 방에서 들려오던 대화가 특종이 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 5인이 위성정당을 하기로 논의하는 과정이어서다. 운이 좋았지만, 운도 실력 아닌가.
당시 민주당은 군소 야당과 담합해 청와대의 의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과 군소 야당의 염원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법안(선거법)을 강행 처리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다수의 의석을 얻으면 이에 연동해 비례대표에선 의석을 얻기 어렵게 만든 제도다. 거대 정당인 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이 각각 20석 안팎의 손해를 봐야 했다. 자유한국당은 법이 통과되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설마 했다. 곡절 끝에 결국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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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정당 외주하며 공천도 외주화
그 결과물이 윤미향·양정숙·최강욱
정당의 기본이 공천, 직접 관장해야
」
5인 회동은 그 직후였다. 방음과 무관한 구조 덕분에 이들의 적나라한 토로를 들을 수 있었다. 공개적으론 자유한국당을 비난했지만 따라 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었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의 최측근인 윤호중 사무총장은 “저들이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사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고 했고, 국회 정개특위 간사로 선거법 협상을 했던 김종민 의원은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않느냐.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한 건 한국 정치를 알바니아 수준(위성정당이 난립했다)으로 퇴행시킨 공수처는 3년간 ‘유죄 0건’이고, 애당심의 김종민 의원은 ‘미래’ ‘개혁’을 내세우며 탈당했다. 허업(虛業)이었다.
어쨌든 5인 회동 보도 이후 민주당이 주춤할 줄 알았다. “위헌”이니, “위장정당”이니 그간 쏟아낸 말이 무시무시했다. 민주당의 염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외려 속도를 냈다. 진보 쪽 ‘시민사회’가 만든 플랫폼 정당에 합류하는 모양새만 취했을 뿐이다. 친문들의 비례용 정당인 열린민주당도 창당했다.
위성정당인데도 아닌 양 하는 사이, 공천 결과물이 어떠했는지 지난 4년 절감했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의혹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판결받은 윤미향 의원, 부동산 의혹으로 제명된 양정숙 의원,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로펌 인턴확인서를 허위로 써 준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전 의원 등이 도드라진다. 덜 드러났을 뿐, 정상적인 과정이었다면 공천되지 않았을 자질의 인물도 다수다. 이들을 모두 품은 민주당은 공천 과정에 대해선 말을 꺼렸다. 윤미향 의원을 두고도 “더불어시민당에서 논의가 있었다”고만 했다. 위성정당을 외주화하더니 책임도 외주화한 것이다.
이번에도 이래선 곤란하다. 원래 정당은 “다른 조직과 달리 공직 후보를 지명하고 그들을 공직에 선출함으로써 정부를 통제하는 역할”(EE 샤츠슈나이더)을 한다. 공천은 기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공천 과정에서 검증하고 또 검증도 된다. 민주당이 다시 이를 다시 남에게 넘긴다? 안 될 일이다.
물론 민주당의 선거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한 뒤 이전 방식(병립형)으로 돌아가는 듯하다가 당 안팎의 “정치개혁 후퇴”란 반발이 커지자 주춤한 상태다. 이 대표는 18일에도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명분과 실리가 일치하지 않는데 가능한 한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멋의 포기’와 병립형이 직결되는 건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멋없더라도 지지 않는 기술(위성정당)을 시연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군소 정당에서 이미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자"고 하자 민주당 일각에서 "민주당 주도가 아니니 위성정당 논란과 전혀 상관없다"고 동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민주당이 현 제도를 고수키로 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말고 직접 위성정당을 만들어라. 그나마 책임정치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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