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의 돈의 세계] 저작권은 불가침인가
번역가들이 쓴 『K 문학의 탄생』에서 낙태된 원고가 있었다. 지난해 8월 간행 직전 들어내졌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을 비평한 글이었다.
그 원고를 쓴 윤선경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최근 편집자에게서 들은 경위를 밝혔다. 윤 교수는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한강이 본문 인용 허락에 회의적”이었고 출판사는 원작자의 뜻에 따랐다고 전했다.
한강 작가는 그의 텍스트 해석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해석의 빈곤화 등 문학적 견지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저작재산권 측면에서도 우려된다. 즉,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원문을 비판적으로 인용하지 못한다’는 출판계의 불문율을 굳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저작권은 그 정도로 불가침은 아니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이 제한되는 여러 경우를 열거한다. 그중 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허용한다. ‘비평’을 풀이하면, 비판 대상으로 자신의 글이 인용되는 데 동의하는 저작권자는 드물다는 현실을 고려한 제한이다.
이 조항을 적극 적용한 사례도 있다. 필자가 써서 지난해 3월 펴낸 책 『첨삭 글쓰기』다. 이 책은 다수의 원문을 저작권자 동의 없이 인용하고 품평한 뒤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모범으로 제시한 인용문은 앞서 저작권자의 승낙을 거쳐 원고에 반영됐다. 필자는 ‘비동의 인용’에 대해 전문가의 검토를 받고자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서면 질의도 했다. 답변의 결론은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만 할 수 있다”였다.
개별 건에 대한 최종 판단은 일률적일 수 없다. 다만 동의 없는 인용과 비판이 용인되는 스펙트럼과 관련해 『첨삭 글쓰기』도 참고할 선례라고 본다.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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