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부정하지 않는 사회
2018년 1월 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시의 한 아파트. 가스 검침원이 문을 두드렸다. 이상한 낌새에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드디어 열린 문. 집 안에 들어서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주민들이 발견한 건 두 구의 시신. 82세의 어머니와 52세의 딸이었다. 사인은 저체온증과 영양실조. 어머니의 사망 추정 시기는 2017년 12월 중순. 딸의 사망 시점은 그로부터 약 열흘 뒤인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딸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시신이 발견되기 열흘 전. 집 앞에 혼자 웅크려 앉아있는 딸에게 이웃은 말을 걸었지만, 딸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 조사 뒤, 이웃들은 경악했다.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지만, 실내엔 9만엔(약 80만원)의 현금이 놓여있었던 탓이었다.
일본 NHK가 전한 두 명의 고독사 뒤엔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던 딸은 10년 넘게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유일한 버팀목인 어머니에겐 딸의 문제를 상담할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어머니의 사망에 절망한 딸은 사망 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뒤를 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 심리학자 사이토 다마키(斎藤環)는 『중고년 히키코모리』에서 80대의 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녀를 돌보는 ‘5080 문제’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먼저, 은둔 개시 연령의 상승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평균 연령은 15세였지만, 최근엔 21세 이상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한 번 은둔에 들어가면 이들이 겪는 단절의 시간은 평균 13년. 여기에 내 아들·딸, 형제·자매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마저 겹치면서 삿포로의 비극 같은 일이 벌어졌단 설명이다.
최근 청년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풀겠다고 우리 정부가 나섰다. 54만명이란 조사 결과도 처음 내놨다. 정부는 상담 창구를 마련하고, 전담기관을 두겠다고 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있다. 오랜 시간 자조 활동을 해온 일본 KHJ전국히키코모리가족회연합회 우에다 리카(上田理香) 사무국장의 조언이다. “히키코모리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사회에서 존재를 감춘 사람들입니다. 부모의 안일함, 개인의 유약함으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히키코모리를 부정(否定)하지 않는 사회,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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