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의 쇼미더컬처] 성난 사람들 껴안기
올해 미국 에미상을 휩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한국에서 특히 주목받은 건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 때문이다. 보복운전에 관한 자전적 에피소드를 10부작 블랙코미디에 녹인 이성진(43) 감독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41)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덕분에 작품 곳곳에 한국 문화가 지문처럼 찍혀 있다. 간식으로 등장하는 라면, 새집에 갖춘 LG 백색가전, 카톡 영상통화 등이다. 이름 대신 “형이라고 불러라”고 타박할 때나 한식당에서 “아가씨 여기요” 하며 주문할 땐 웃음이 났다. 주인공 대니가 짊어진 ‘K장남’의 무게 때문에 그의 어리석은 범죄 궁리가 짠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K컬처에 주목하는 건 난센스다. 한식이나 한인교회 등은 이민 2세대가 공유하는 하위문화에 불과하다. ‘성난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미국식 시리즈 문법을 잘 체화해 변형한 하이스트 무비(강탈·절도 과정에 주력하는 장르)다. 다만 불평하고 화를 내는 주인공들이 아시아계란 점이 새롭다. 그러고 보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에서도 이민 2세대 여주인공 앰버가 곧잘 화를 내는 ‘불의 원소’로 표현됐다. 한국에서 723만명이 호응한 이 애니의 감독 역시 한인 2세 피터 손이다.
화내는 건 아무나 못 한다. 이제까지 미국 주류문화에서 한인은 화를 내는 대상이거나 근면·조용한 이미지(주로 조연·단역)였다. 지난 세기에 대거 미국으로 건너간 1세대는 그렇게 묵묵히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려 이들 자녀 세대가 목소리를 내게 되자 자화상이 달라지고 있다. 직접 메가폰을 잡고 속속들이 까발린 내면에 질투와 분노가 넘실댄다. 당연히 한인이 별나서가 아니다. 욕망하는 한 인간은 좌절하게 마련이다. ‘성난 사람들’의 에미상 쾌거는 미국 주류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을 보편적 인간의 이야기로 껴안았다는 뜻이 된다.
사실 ‘미나리’ ‘파친코’ 등 디아스포라 작품들의 성취를 두고 한국에선 해외 한인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소셜미디어와 글로벌 OTT로 실시간 연결된 시대에 그들의 활약이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되새겨야 할 것은 글로벌 이주 시대에 한국에도 점점 더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고 있고 저출산·고령화를 고려하면 다문화 공존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바깥에서 환대를 요구하려 한다면 우리 안의 성난 사람들을 껴안아야 마땅하다. 지난해 아카데미 7관왕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미국 내 이주민들의 고군분투를 판타지 모험물에 담으면서 극중 인물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제발 다정하게 대하세요.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친절하라. 우리 각자는 서로에게 적응해야 할 타인들이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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