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맞고 한달 버틴 놈…통마리 맛을 니들이 알아?
매서운 추위가 동반돼야만 진가를 내는 별미가 있다. 추위 속에서 얼다 녹기를 반복하며 감칠맛을 키우는 과메기다. 과메기의 재료가 되는 생선은 두 가지다. 과메기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꽁치와 과메기 원조로 통하는 청어다. 생선이 다르므로 나는 지역도, 맛과 문화도 사뭇 다르다. 경북 포항과 영덕에 과메기 덕장이 밀집해 있다. 겨울에도 따뜻한 동해안에서 해와 바람이 가장 넉넉한 고장이다.
겨울 바다가 키운 맛
과메기는 생선 이름이 아니다. 한겨울 꽁치나 청어를 반건조 형태로 말린 음식이 과메기다. 저장법과 먹는 방식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과메기의 제철이 11월부터 2월까지로 한정된 것도 비슷한 이치다. 도다리가 봄날의 쑥을 만나야 제맛을 내는 것처럼, 과메기도 겨울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완전해진다. 한겨울 바닷가에 해풍을 맞도록 며칠간 널어두면, 지방이 많은 꽁치와 청어가 수분과 기름기를 짝 빼고 졸깃졸깃 탄력 있는 맛으로 거듭난다.
어촌의 겨울은 늘 궁핍했다. 오늘 잡은 갯것을 하루라도 더 오래 쟁여두고 먹기 위해 말려 먹는 법을 터득했다. 과메기도 그중 하나다. 과메기는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생선을 일일이 손질하고, 대에 널고, 거두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동트기 전 생선을 야외에 내놨다가 해가 지면 도로 생선을 들여놓는 일을 겨우내 반복해야 한다. 과메기를 다루는 이는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 산다. 포항에서 만난 한 과메기 판매상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기름은 지지도 않는다카이, 원래 과메기 장수와는 친구도 안 한다캤다.”
반면에 미식가와 술꾼에게는 이만한 벗이 없다. 본연의 맛을 따지는 고수는 소금이나 초장만 살짝 찍어 먹기도 하는데, 보통은 미역·꼬시래기·김·마늘·쪽파 등을 곁들여 먹는다. 어느 쪽이든 쫄깃하니 혀에 착 감긴다.
꽁치의 전성시대
‘꽁치냐 청어냐’의 문제는 과메기 애호가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부먹 대 찍먹’ 논쟁만큼은 아니어도 선호도가 확실하다. 원조는 청어지만, 대중화에 성공한 건 꽁치 쪽이다.
일단 꽁치 이야기부터. 우리가 먹는 과메기는 대개가 꽁치를 말린 것이다. 포항 구룡포와 호미곶 일대에서 전국 과메기의 90%가량이 생산되는데, 그중 90% 이상이 꽁치다. 꽁치는 대개 북태평양에서 거둬들인다. 원양산이라고 하지만, 결국 과메기를 만드는 건 포항의 바람과 햇볕이다. 구룡포 일대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한 데다(한겨울에도 낮 기온이 5~10도를 오간다) 강한 바닷바람까지 불어 과메기 생산에 제격이다. 포항에만 대략 180개의 과메기 덕장이 포진한 배경이다. 이맘때 구룡포항 인근 삼정리 마을에 들면 꽁치를 바닷가에 널어둔 풍경을 쉬이 볼 수 있다. 마을회관에도 걸려 있고, 가정집 빨랫줄에도 걸려 있다.
요즘은 과메기도 속도전이다. ‘통마리(생선을 통째로 말리는 방식)’보다 ‘배지기(생선을 갈라 내장과 뼈를 제거한 뒤 말리는 방식)’가 절대다수가 되면서 속도가 붙었다. 포항의 많은 덕장이 현대화된 건조실을 갖추면서 주기가 더 짧아졌다. 낮에는 밖에서 해풍을 맞게 하고 밤에는 습도·온도를 맞춘 건조실에서 인공 바람을 쐬는 식이다. 옛날에 사나흘 이상 말렸던 꽁치는 이제 하루나 이틀만 말려도 충분하다. 하루 약 1.2t의 과메기를 생산하는 김진희(55) 범진상사 대표는 “요즘은 미세먼지나 악천후와 관계없이 균일하고 위생적인 과메기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이순신도 즐긴 청어
그래도 원조는 청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청어를 말려 군비를 마련하고 곡식과 바꿔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포항도 청어가 주력이었지만, 1960년대 이후 물량이 달리자 원양산 꽁치로 갈아탔다.
청어 과메기 생산에 가장 적극적인 고장은 영덕이다. 2000년대 들어 동해안에서 다시 청어가 잡히면서 틈새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영덕읍 남부 해안의 창포리가 청어 과메기 마을로 통하는데, 전통 방식 그대로 해풍으로만 청어를 말린다. 최소 사나흘이 걸린다.
꽁치와 청어는 구별이 쉽다. 몸집은 청어가 크다. 꽁치 과메기는 살이 검붉고, 청어 과메기는 노란빛이 돈다. 꽁치 쪽은 쫄깃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청어 쪽은 기름진 감칠맛이 우세하다.
윤정길(66) 영덕 청어과메기 조합장은 “청어든 꽁치든 냄새가 심한 건 제대로 말리지 못한 탓”이라며 “비린내가 없고 빛깔이 투명해야 좋은 과메기”라고 말했다. 재래시장에서는 두 어종 모두 1두름(20마리)에 3만원 안팎에 팔린다. 포항에는 두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널렸으나 영덕에는 청어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없다. 대신 덕장에서 직거래가 가능하다.
어종을 떠나 통마리 과메기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소비자도 판매자도 건조 시간이 짧고 먹기 간편한 배지기 방식을 선호해서다. 그러나 “진짜 별미는 통마리”라는 고백을 포항·영덕에서 공통으로 들었다. 만약 덕장이나 시장이나 통마리 과메기를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마시라. 창포리에서 통과메기 말리던 한 주민의 말을 인용한다.
“칼바람 맞고 한 달 버틴 놈의 냄새와 맛은 모르면 몰랐지,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어.”
포항·영덕=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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