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온도 54도 혹독한 사막… 현대기아車 ‘극한의 담금질’
서대문구 면적에 해발고도 800m
승차감·내구성·재료 시험 등 진행
북미 모빌리티 개발 전초기지 역할
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광활한 사막길을 내달리다 보니 ‘Hyundai Motor Group Callifonia Proving Ground(현대자동차 그룹 모하비 주행시험장)’이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가 삼엄한 검문소를 지나 철조망 둘러친 내부로 들어가니 광활한 사막 속에 흰색의 인공 건조물이 보였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캘리포니아시티 내 모하비 주행시험장의 모습이다. 이곳은 전경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광활했다. 현장 관계자는 “전체 면적이 약 1770만㎡(약 535만평)으로 서대문구보다도 크다”며 “인공위성으로도 식별 가능한 정도”라고 설명했다. 해발고도는 약 800m로 강원도 대관령과 비슷하다.
모하비 사막에 주행시험장이 들어선 건 2005년이다. 혹독한 기후와 자연환경이 차량의 내구성을 시험하기 최상의 조건을 갖춘 장소라는 판단에서다. 여름철엔 평균 기온이 39도에 지면 온도가 54도를 넘나드는데, 겨울 평균 기온은 26도다. 폭풍이 있을 때는 비와 눈이 몰아친다. 사계절 내내 다른 조건의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현대차 측은 설명했다.
이곳에는 고속 주행 안정성을 시험하는 고속 주회로, 오프로드 주행성능을 평가하는 오프로드 시험로 등 12개 시험로가 있다. 승차감, 제동성능, 소음, 진동 등을 평가하는 현지 적합성 시험, 다양한 노면 상태에서 차량 상태를 평가하는 내구 시험, 여러 부품이 혹서 환경에서 파손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재료환경 시험 등이 진행된다.
이날 기자는 미국에서만 판매하는 기아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텔루라이드를 타고 오프로드 시험장 일부를 달렸다.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은 자갈과 진흙의 연속이었다.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웅덩이와 간혹 등장하는 큰 바위는 운전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경재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미국에서는 예기치 않게 오프로드를 마주치곤 한다”며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코스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동 중 마주한 U자 형태의 급경사로도 관심을 끌었다. 말발굽을 닮아 ‘말발굽로’라고 불리는 이 코스에선 제네시스 GV80 쿠페 차량이 20%의 경사길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차량은 수차례 코스를 통과했다.
기자는 제로백이 3.5초에 불과한 EV6 GT를 몰고 핸들링 시험로도 주행했다. 넓은 곡선 주로가 쉼 없이 이어져 있었다. 고속으로 곡선 구간에 진입한 뒤 다시 고속으로 빠져나가는 등의 한계 상황에서 차량의 주행 안정성을 시험하는 곳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행시험을 진행하며 하중이 큰 전기차에서도 승차감, 조종 안정성을 모두 만족하는 최적점을 찾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고 말했다.
부품이 태양광과 태양열에 얼마나 견디는지 검증하는 재료환경 내구시설과 2~12%의 완만한 경사가 길게 이어진 장등판 시험로도 볼 수 있었다. 내구시설에선 차량의 범퍼, 대시보드 등이 사막 태양광과 자외선 등에 오랜 기간 노출됐을 때 변질되는지 등을 시험하게 된다.
코스 중 가장 눈길을 끈 곳은 ‘고속 주회로’였다. 총 길이 10.3㎞로 남양연구소 시험로보다 2배 이상 길다. 고속도로를 모사해 길게 뻗은 도로는 시속 200㎞로 주행 가능한데, 한 바퀴 도는 데 3분 정도 걸린다. 이곳은 차량 1대당 3만 마일, 4000바퀴 이상을 문제없이 달려야 통과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이곳을 통해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시험 등 북미 현지 연구개발(R&D)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개발 기간 단축으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신차 생산을 적기에 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현대차·기아는 2020년대 들어 미국에서 10% 내외의 신차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주행시험장은 전 세계 시험장 가운데 가장 혹독하면서도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험장”이라며 “앞으로도 고객의 니즈와 시장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글로벌 고객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모빌리티 개발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시티=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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