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로케트 쁘로그레쓰'…최선희, 기밀서류 들고 푸틴 만났다

이근평, 이유정 2024. 1. 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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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수행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북·러 간 우주 기술 협력, 즉 미사일이나 위성 기술 이전 시도를 짐작케 하는 서류가 포착됐다.

이날 최선희가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북측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 표지가 AP통신 등 외신들의 카메라에도 찍혔다. 이를 확대해 보면 서류 상단엔 ‘우주 기술 분야 참관 대상 목록’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우주 기술’을 특정했는데, 군사정찰위성이나 같은 기술을 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분야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제목 밑에는 참관 장소로 추정되는 ‘1.우주로케트 연구소 〈〈쁘로그레쓰〉〉’ ‘워로네쥬 기계공장’ 등이 적혀 있었다.

‘쁘로그레쓰’는 우주 발사체 기술 연구소인 ‘프로그레스 우주 로켓 연구소’로 보인다. 프로그레스는 러시아 연방우주국(로스코스모스)의 계열사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도 오른 국영 기업이다. 이곳은 로켓의 개발에 관여할 뿐 아니라 우주 발사와 관련된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참관시 지상 관제소 등 위성 운용에 필요한 시설을 직접 둘러보는 게 가능하다.

프로그레스 연구소 홈페이지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표적인 ICBM 겸 우주 로켓 소유즈 시리즈와 무인 우주선 프로그레스 등 개발에 관여했다고도 돼 있다. 북한이 목말라 하는 ICBM 및 군사 정찰 위성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기술과 연관이 큰 곳이란 뜻이다. 본부는 모스크바에서 동남쪽의 사마라 지역에 있고, 모스크바에도 대표 사무소가 있다.

옛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가 생산해온 소유즈 로켓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우주 발사체를 개발·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레스 우주 연구 센터의 홈페이지. 프로그레스 홈페이지 캡처.

‘워로네쥬 기계공장’은 모스크바 남부 ‘보로네시 기계공장’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곳 역시 로켓 엔진과 정밀 부품을 생산하는 국영기업으로, 액체 추진 로켓의 제작과 대량 생산에 특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문서에선 ‘우주광학생산쎈터’로 추정되는 글자도 포착됐다. 위성체에 탑재할 카메라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러시아의 기술 지원과 연관된 대목일 수 있다. 정찰위성은 최소 서브미터(1m 이하)급의 정밀한 해상도를 갖춰야 하는데, 북한의 정찰위성은 이런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최선희의 방러길에는 북한의 무기 개발 총책인 조춘룡 당중앙위 군수공업부장도 함께 했다. 때문에 참관 목록들이 북한이 필요로 하는 미사일이나 위성 관련 기술 협력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참관이나 견학 자체가 협력을 전제로 가능한 일정이기 때문이다. 즉자적으로 현장에서 기술 전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으로선 러시아의 선진 기술을 직접 보고 미진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향후 협력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북 측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의 목록이 단순히 북한이 참관을 희망하는 장소들인지, 러시아도 이에 응해 참관 일정이 확정된 대상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와 관련, 최선희는 15~17일 일정으로 방러했고, 북한에서 출발한 것은 14일이었다. 꽉 찬 2박3일 체류였던 셈인데, 해당 기간 중 공개된 최선희의 일정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의 양자회담, 푸틴 예방 등 두 개가 전부였다. 남는 시간 동안 어떤 일정을 소화했는지는 18일 오후 현재 북한 매체 보도 등을 통해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실제 다양한 장소들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선희가 러시아 우주 기술 연구·제작 기관을 방문한 게 맞다면, 시찰과 함께 답사 성격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에 이어 또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면서 ‘후보지 목록’을 짠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사일 전문가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러 간 기술 협력이 이뤄진다면 직접적인 제재 위반이 되는 ICBM 기술 이전보다는 위성 등 향후 우주 발사체의 대형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단순 참관만으로 기술 이전이 즉각 되긴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는 물밑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가 중요하고 후속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주 분야에서의 북·러 간 밀착은 미국도 주시하고 있다. 같은 날 존 플럼 미 국방부 우주 정책 차관보는 북한의 군사 정찰 위성에 관한 질의를 받고 “진지하게 지켜보고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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