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죄송… 예산 배분 시스템 변화 필요했다”
자고일어나니 ‘공공의 적’이 돼 있었다. 지난해 7월 취임과 비슷한 시기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진행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성경 1차관은 과학계에 예산 삭감 주도자로 낙인 찍혔다. 대통령실 출신에 과학 비전공자인 점도 그를 공격하는 포인트다. 지난 17일 국민일보와 만난 조 차관은 덤덤했다.
“한 사람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게 과기정통부 전체 조직에는 나을 수 있어요. R&D예산 혁신을 이루고 때가 되면 조용히 (학교로) 돌아가야죠.”
R&D예산이 올해 약 8% 삭감된 데 대해서는 먼저 머리를 숙였다. 그는 “현장에서 묵묵하게 연구에 집중하시는 분들,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학생들에게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굉장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R&D 예산 배분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전방위적인 인신모독성 공격에 대해, 조 차관은 “언젠가는 진심이 사심을 이긴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올해 R&D예산 확정 과정에서 진통이 컸고, 과학자들이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
“급변하는 글로벌 R&D 환경을 보면 현재의 예산 배분 시스템을 가져가는데 한계가 명확했다. 혁신이 필요한데 과거처럼 예산 확대 일변도로 해선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정교한 수술로 시스템을 조정해야 하는데 좀 무디게 듬성듬성하게 된 건 반성의 여지가 있다. 사실 솔직히 예산이 어떤 경로로 이렇게까지 축소됐는지 알지 못한다. 예산부처로부터 삭감 결과를 받아들고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지난달 일부 과학자의 일탈 사례와 부정적인 관행 8가지를 공개 발언했다.
“R&D카르텔이란 국가와 공공의 이익 창출보다 개인과 특정 무리의 이익 확보를 위해 R&D 기획, 예산 배분, 평가 등에 부당하게 개입해서 실력과 열정이 있는 연구자의 기회를 훼손하는 행위다. 만연하지 않지만 존재는 한다. 둑에 작은 구멍이 났는데 놔두면 대책없이 무너지기 때문에 그걸 막자는 취지였다. 일본 방문 때 R&D 담당 정부부처, 출연연구기관, 예산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 3곳을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우리가 연구개발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결과를 국민과 사회에 어떻게 환원하느냐가 연구 목표’라고 말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차관 취임 이후 그동안 ‘정부가 무엇을 더 지원할 건가, 왜 지원을 덜하나’ 이런 얘기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과학계와 반목만 할 수 없지 않느냐.
“정부는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낙후된 시스템을 과감히 혁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도 올들어 2번이나 연구비를 확 늘리겠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드는 게 목표다. 소통도 강화하겠지만 이벤트식 소통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우리 과학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해결하고, 정책 추진하고 인재 키워나가는 과정 과정마다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기업과도 같이 고민하는 게 일상화되는게 필요하다.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이 언제든지 마음 편히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최소 2~3명씩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우주항공청설치법이 통과된 후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
“기적이 이뤄졌다. 사실 의원입법이 상대적으로 정부입법보다 수월했지만 강력한 의지를 담아 정부입법을 추진한지 278일만에 통과가 됐다. 우주항공정책이 각 부처에 흩어져 있어 법안 만들때도 부처 간 벽이 높았지만 모든 부처가 긴밀하고 신속히 공조해 법안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법안도 대통령이 시정연설과 공식 행사 때 법안 통과해야 한다 강조한 적 없고, 통과 때 환영한다고 서면 브리핑 낸 경우가 없었다. 한마디로 두터운 공조로 인한 역사적 승리라고 정의하고 싶다.”
-오는 5월 우주항공청 개청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통과된 법안 중요 부분 중 하나가 연봉의 상한을 없앤 것이다. 연구원이 대통령보다 높은 연봉 받을 수 있다. 정부, 사천시, 경남도 모두 협력해서 교통, 교육 등 정주여건을 빠른 속도로 개선할 생각이다. 인재 확보를 위해 해외 리크루팅도 진행할 예정이다.”
-글로벌 R&D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AI(인공지능)나 양자역학 이런 것은 이른바 게임체인저 기술로 한 국가가 주도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래서 글로벌 연대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국가 간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미 신뢰가 조성된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여러 개 준비 중이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바이오 협력 사업 중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라고 있다. 우리는 바이오 역량은 뛰어나지만 미국에 비해 실험 인프라가 약하기 때문에 협력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해외 톱티어 연구기관과 협력 플랫폼도 구축할 생각이다.”
-6개월여 차관으로 있으면서 비전공자의 서러움은 없었는지, 최근 불거진 논문표절 의혹 등에 대해 할말이 많을 것 같다.
“과학 담당 차관의 전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웃음)? 과학 전공이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은 없다. 과기정통부 구성원들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들도 저를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책임지는 자리다. 최근 저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R&D 시스템 혁신을 추진하는 시점에 모욕과 망신주기식 의혹 제기가 난무하는 것을 보니 정책적 저항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단지 걱정은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봐, 그리고 과기정통부 구성원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질까봐 뿐이다.”
조성경 1차관=▲서울(54)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고려대 언론학 박사 ▲아주대 에너지공학 박사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2014~2017)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과학기술비서관(2022)
이성규 산업1부장, 임송수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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