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의무제' 폐지 올인? 윤석열은 대통령인가 투기꾼인가
[이태경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1.16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또다시 국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로는 야당인 민주당에 요구한 것인데, 노란봉투법 등 야당이 통과시킨 민생법률안들에 대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입법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재의요구를 반복해 온 윤 대통령의 태도도 비상식적인데다, 하필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라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실거주의무제는 주변보다 시세가 낮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이 투기세력이 아닌 무주택 자가점유자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무주택실수요자 타령을 하면서 이 제도의 폐지를 야당에 거듭 촉구 중이다.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시행사 대표인지 혼동스러울 지경이다.
'실거주의무제' 폐지 논란 일으킨 장본인이 민주당 압박?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4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주 임시국회에서 우주항공청법,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등 101건의 법률안이 통과됐다"면서도 "아직도 민생 현장에 애타게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법안들이 많이 잠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에 대해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잔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잘못된 입법으로 집값이 많이 올라갔다. 무분별한 규제로 국민의 주거이전 자유와 재산권 행사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 서서 주택법 개정에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고 했다.
위 발언에선 '실거주의무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적개심을 뚜렷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실거주의무제에 대한 강렬한 적의만 있을 뿐 이치에 닿는 말이 하나도 없어 황당하다.
먼저 실거주의무제 폐지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이란 사실을 분명히 해야겠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동주택은 주변보다 시세가 현저히 저렴하기 때문에 청약에서 당첨되는 순간 시세차익이 발생한다.
하여 관건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공동주택의 속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세차익이 가급적 투기꾼이나 다주택자가 아닌 무주택 실거주자에게 귀속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분양권 전매제한'이나 '실거주 의무제' 같은 장치들이 설사 투기세력이 분양가 상한제 적용주택에 청약이 가능하다 해도 청약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파제 노릇을 해 왔다.
▲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정당계약 마감일인 지난 2023년 1월 17일 시민들이 둔촌동 견본주택에서 상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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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무주택 실소유자들을 걱정해 주는 척을 하고 있는데, 둔촌주공 등의 실거주의무가 있는 공동주택에 실제로 거주할 의사가 있는 무주택실거주자들은 실거주를 전제로 계획을 세운터라 아무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는 순전히 투기 목적으로 둔촌주공 등의 일반분양 물량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다. 이들은 실거주 의사가 전혀 없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들의 처지를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나서서 대신 근심하는 건 정말 가당치 않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주거이전의 자유와 재산권 행사를 '실거주의무제'가 제한하고 있다고 강변하는 윤 대통령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부동산 불로소득 추구에 눈이 먼 시행사 대표나 투기꾼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실거주의무제'는 투기꾼들이 아니라 무주택 실거주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실거주의무제' 폐지를 오매불망 바라는 건 전적으로 단기 시체차익을 노리면서 분양받은 주택에 거주할 의사도, 계획도 없는 투기꾼들이다.
'실거주의무제' 폐지에 쏟는 정성,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쏟길
'실거주의무제' 폐지에 쏟는 윤 대통령의 정성과 노력은 정말 갸륵(?)하다. 윤 대통령은 작년 12월 19일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국회에 신속한 여야 합의 처리를 요청했다 한다. 말이 여야 합의이지 야당인 민주당에 요청한 셈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아파트 4만 7000여 호 중 3분의 1 가까이가 내년에 입주를 앞두고 있다"며 "1년 가까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주택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논의를 서둘러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민주당을 압박한 것이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을 가로막는 국민의힘을 규탄하며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끝으로 한 마디만 보태자. 윤 대통령은 '실거주의무제' 폐지에 쏟는 정성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쏟길 바란다. 목숨을 끊고 희망을 상실한 수만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겐 냉담하기 이를 데 없던 윤 대통령이 투기꾼들만 이익을 볼 '실거주의무제' 폐지에 올인하는 건 정말 볼썽사납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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