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난 젊음·추억… ‘중년의 감각’에 대한 섬세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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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에는 본문이 몇 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을 비롯해 모두 15편의 단편소설이 담겼다.
소설마다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데, 장소는 주로 뒷마당 덱이고 때는 대개 여름 초저녁이다.
소설 속 남자들은 고요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삶은 아주 낯선 곳으로 흘러와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서정적인 문장과 영리한 구성으로 엮어내면서 단편소설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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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332쪽, 1만8000원
‘사라진 것들’에는 본문이 몇 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을 비롯해 모두 15편의 단편소설이 담겼다. 미국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40대 중년 남자의 1인칭 시점에서 소설들이 서술된다. 그래서 수록작들이 많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마다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데, 장소는 주로 뒷마당 덱이고 때는 대개 여름 초저녁이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친구나 가족과 주고받는 대화들, 또는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찾아오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맨 앞에 배치된 단편 ‘오스틴’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에 혼자 즐기는 서너 시간의 여유를 좋아한다. 아이 키우는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 “나는 늦은 밤 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어지는 ‘담배’는 네 페이지 분량의 독백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라인벡’이라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발견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소설 속 남자들은 고요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삶은 아주 낯선 곳으로 흘러와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안온해 보이던 현재의 삶에서 균열을 발견하거나 곧 들이닥칠 파국을 예감하기도 한다. 아내가 파킨슨병의 조짐을 보이고, 부부의 별거가 조금씩 길어지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 살자고 약속했던 친구가 낯설어지고, 오랜 친구가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영영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흘렀다는 감각, 무언가가 변했거나 잃어버렸다는 감각, 중산층의 일상 뒤에 숨겨진 위기와 불안의 조짐, 버티고 있지만 자신이 없고 쓸쓸하다는 느낌, 미래가 더 나아지진 않을 거라는 생각….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느끼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이런 감정들을 ‘중년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라진 것들’은 바로 이런 감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지나온 세월, 사라진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작가 앤드루 포터는 2008년 발표한 첫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플래너리 오코너상 등을 받으며 미국 단편소설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 소설집은 2019년 김영하 작가가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도 많이 읽혔다. 포터는 지난해 서울작가축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포터는 2013년 장편소설 ‘어떤 날들’ 이후 다시 단편으로 돌아와 두 번째 단편집 ‘사라진 것들’을 내놓았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서정적인 문장과 영리한 구성으로 엮어내면서 단편소설이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보여준다. ‘라임’이나 ‘빈집’ 같은 수록작은 본문이 한두 페이지 분량이지만 인생의 어떤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며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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