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배고파서가 아니다…평양 엘리트들이 국경 넘는 이유
지난해 북한이탈주민이 급증한 데는 엘리트 계층과 20~30대의 한국행이 특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낀 주민이 늘면서 탈북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8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입국한 탈북민은 196명으로 전년(2022년) 67명보다 크게 늘었다. 코로나19가 한풀 꺾여 중국 등에서 국경을 넘기가 수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과 2019년 각각 1137명, 1047명을 기록한 탈북민 수는 2020년과 2021년엔 각각 229명, 63명으로 급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탈북민 대부분 제3국에서 오랜 기간 체류한 인원”이라고 말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164명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직업은 노동자·주부·농장원이 74.0%로 가장 많았다. 출신지역 별로 보면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함경도 출신이 70.0%에 이른 가운데 평양 출신이 25명으로 12.8%나 됐다. 지금까지 총 탈북민 중 평양 출신 비율이 2.5%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증가세다. 평양은 북한 전 지역 중 생활 수준이 가장 높고 구성원들의 충성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한 현상이다.
엘리트 계층 탈북민이 늘어난 점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신변 보호를 위해 정확한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10명 내외”라며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엘리트 계층이 지난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전면 폐쇄하고 해외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른 체제를 경험한 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외교관, 해외주재원, 유학생 등으로 일반적인 탈북민과 달리 별도의 시설에서 정착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입국 탈북민의 절반 이상인 99명이 20~30대인 점도 특징이다. 북한의 MZ세대가 탈북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경향이 수년 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여기엔 북한 사회 내 퍼진 체제 불만이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탈북 이유로 식량난을 꼽는 비율이 체제 불만을 꼽는 비율보다 높았지만,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난을 탈북 이유로 든 비율은 2020년 22.8%로 체제 불만을 꼽은 20.5%를 웃돌았지만, 2021년에는 21.6%(식량난)·22.8%(체제 불만), 2022년에는 21.4%(식량난)·22.6%(체제 불만)로 집계됐다. 배고픔뿐 아니라 독재 체제의 억압을 견디지 못한 탈북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또 2020~2022년에는 없었던 해상 탈북 사례가 지난해 두 차례(5월 6일 서해 귀순 9명·10월 24일 동해 귀순 4명 등 총 13명) 이뤄졌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해상 탈북민들이 공통적으로 북한 내 식량난을 언급했다”며 “어려운 북한 내부 사정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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