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경력단절 끝,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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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신랑과 함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신랑은 대체 왜 우냐며 이해를 못 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나와 한 살 차인 그녀에게 빙의되어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일하는 풀타임 근무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나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비록 1년짜리 계약직이고, 17년 전 받던 월급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일 하는 그 자체로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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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람 기자]
5년 전, 신랑과 함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신랑은 대체 왜 우냐며 이해를 못 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나와 한 살 차인 그녀에게 빙의되어 대성통곡을 했다.
▲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일반 사원에서 팀장까지 남부럽지 않은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던 나는 28살에 결혼을 했고, 4년간 연년생과 두 살 터울의 아이 셋을 출산하며 직장 생활 대신 육아를 해야 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업주부가 되었다.
결혼을 하며 직장 생활을 시작한 신랑 월급만으로는 늘 적자였지만 친정과 시댁에서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직장에 나가지만 않았을 뿐 집에서 1인 사업자로 인터넷 판매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일하는 풀타임 근무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나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직장 생활 세 가지를 병행해낼 자신이 없었다.
무너진 삶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2년 전, 나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번엔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희귀성 자가면역질환 루프스였다.
자가면역질환이란 세균 및 바이러스, 이물질 등의 외부 침입균으로부터 내 몸을 지켜 주어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정상적인 세포를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병을 말한다. 면역세포들이 어디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증상과 질병이 다양하게 분류된다.
그중 루프스는 전신의 모든 세포가 공격 대상이 되어 장기를 침투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희귀성 질환으로, 아직까진 원인과 치료 방법이 없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었기에 나의 40대는 철저한 무너짐의 연속이었다. 10대를 지탱했던 건강이 무너졌고, 20대에 쌓아 올린 경력이 무너졌고, 30대의 전부였던 육아가 무너졌다.
다시 시작
한없이 무너지는 나를 보다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눈 뜰 수 있음에 감사하며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걷고, 뛸 수 있을 때 뛰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 작은 행복이 담긴 커피 17년 경단녀였던 전업주부가 재취업 후 처음 법카로 마신 커피 |
ⓒ 주보람 |
어제는 나의 환영식을 이유로 회식을 했다. 주부가 아닌 신입 직원인 나는 1++A 등급의 한우 가격표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배가 터질 때까지 한우를 마음껏 먹으며 직장인으로서의 행복을 만끽했다.
오늘은 앱테크로 악착같이 모은 포인트를 긁어모은 커피가 아닌 근처 커피숍에서 차장님이 법카로 사주신 달디 단 커피를 마셨다.
마흔넷.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남들처럼 100세 인생의 중간쯤인지, 희귀성 질환이란 꼬리표를 단 내 인생의 끄트머리쯤인지는 알 수 없지만 10대건, 80대건, 건강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내일을 사는 것은 똑같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오늘도 내일도 매일 리셋이다.
어제의 나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단 오늘의 나를 소중히 가꾸는 삶. 그것이 내가 마흔넷에 얻은 삶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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