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작심삼일이네" 여기 해결책이 있습니다
'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박순우 기자]
▲ 해돋이 푸른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 unsplash |
2023년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쉬는 유일한 날이 일요일이다 보니 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밥도 사 먹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함께 보드게임도 하면서.
캄캄한 밤 아이들을 재우고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뒤늦게 두어 시간 뒤면 해가 바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무심할 줄이야. 언제부턴가 내게 내년은 그저 내일이다.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실천할 일들을 죽 나열하며, 꽤 경건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부터는 무덤덤하게 새해를 맞고 있다.
서울에서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 제주 성산일출봉에서는 일출제가 벌어진다. 자정이 되면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사는 곳이 성산일출봉과 가까워 운 좋게 집에서도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 있다. 현장이 아니라 보이는 불꽃의 크기가 작긴 하지만 사람에 치이지 않고 따뜻한 집구석에서 볼 수 있으니, 해가 바뀌면 으레 고개를 돌려 성산일출봉 쪽을 바라본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이 열정적으로 새해가 됐음을 알리는 데도 마음은 고요하기만 했다.
새해에 큰 의미 두지 않는 이유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참 재미없게 산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어디가 고장 난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도 있다. 염려와 달리 나는 지금의 내가 가장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대신 조용하고 소박한 삶이다. 특정한 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매 순간 그저 나답게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는 추구하는 바가 없지 않으나, 해가 바뀌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담담해졌나 돌이켜 보면, '매일 쓰는 삶'으로 건너간 뒤부터다.
쓰고 또 쓰다 보면 나만의 철학이 저절로 세워질 때가 있다. 개똥철학이든 덜 익은 철학이든 내 경험과 사유로 빚어낸 나만의 철학은 나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한다. 그중 하나가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이다.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할애하는 오늘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아가는 삶. 내년부터 운동하는 게 아니라 오늘부터 운동하기, 내일부터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아이들과 함께 하기,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다음 달부터 줄이는 게 아니라 오늘부터 줄이기.
내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쓰는 삶을 살고 싶어 하나둘 기억을 끄집어내 글로 쓰다 보니, 그 속에는 수많은 희로애락이 녹아 있었다. 아픔만 있는 줄 알았는데 행복이 있기도 하고, 상처만 남은 줄 알았는데 배움이 남은 경우도 적잖았다.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건, 행복한 순간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일이었다.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행복의 한복판에서도 누릴 줄을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다시 그런 후회되는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바로 '지금 여기' 네 글자 안에 숨겨져 있었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은 절대 스쳐가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하다. 온갖 잡생각이나 걱정을 잠재우고, '지금 여기'에 충실히 몰입하는 하루하루의 힘을 믿는다. 이 시간들이 쌓이면 분명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늘 머릿속에 떠올리는 두 글자
물론 아무리 내가 오늘만 산다 한들 모든 게 뜻대로 될 리 없다. 몸 상태가 나쁘면 오늘 할 일은 자연스레 내일로 미루게 된다. 의도치 않게 혹은 불확실한 일이 벌어져 계획한 오늘을 보내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늘 머릿속에 오늘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가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식사를 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고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틈틈이 책을 읽는다.
▲ 지난 가을 올랐던 한라산 영실코스. 새해지만 큰 계획은 없다. 다만 하루하루 충실히 뚜벅뚜벅 걸어가듯 살아간다. |
ⓒ 박순우 |
이런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새해를 위해 특별한 계획을 세우거나 굳게 다짐하는 걸 그만두었다. 오늘부터 할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할 수 없다면, 새해가 되었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나는 새해가 되어도 나일 뿐이니 내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지 않을까. 새해는 그저 내일일 뿐이다. 또 다른 촘촘한 하루하루일 뿐이다. 바뀐 건 단지 숫자일 뿐.
그러니 새해가 되었는데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고 낙담할 것도 없고, 또 작심삼일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단지 새로운 결심을 하는데 새해라는 신선한 공기 한 모금이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르니.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하면 되고, 작심삼일이 되었다면 다시 마음먹으면 그만이다. 경건함과 비장함을 내려놓는 대신 유연함과 가벼움을 장착한다. 그리고 다만 살아간다, 오늘을. 그 촘촘한 날들이 모여 또 한 해를 이룰 것이니. 그런 해들이 모여 나의 일생이 될 것이니. 그렇게 나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강을 무심히 그리고 유유히 흐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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