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원 해설서 완역한 김동훈 헌법재판소 연구관
김동훈(47) 헌법재판소 연구관의 '부캐'(자신의 또 다른 캐릭터)는 '정원 덕후(마니아)'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일해 온 그는 2015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로마 대학의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틈틈이 이탈리아 정원을 공부했다. 최근 이탈리아 정원 해설서『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1904)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그를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만났다.
'정원 해설서'는 다소 생소하다.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은 어떤 책인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1862~1937)의 숨겨진 걸작이다. 서양 정원과 건축 양식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라 불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건축과 정원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어느 서점을 가도 관련 책들이 널려있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번역한 이유는.
첫 문장에 꽂혔다. '이탈리아 정원에 꽃이 없다고 하면 과장이리라'인데, 이탈리아 정원을 보며 궁금했던 점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문장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정원'하면 푸른 잔디밭과 만발한 장미꽃을 떠올리는데 이탈리아의 정원은 대리석과 물, 다년생 식물 위주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 때문이다.
이 책이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이탈리아 정원에 관한 많은 해설서가 있지만, 대부분은 무미건조하게 설명만 늘어놓는 식이었다. 반대로 정원 에세이는 일기장에 쓸 법한 주관적 감상 뿐이라 아쉬웠다. 이 책은 해설과 감상의 밸런스를 지키면서도 건축·정원 양식에 얽힌 역사·문화적 맥락을 짚어준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정원을 비교해 설명하는 점도 좋았다.
이탈리아 정원만의 매력은 뭔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이탈리아 단어가 있다. 어려운 일을 마치 쉬운 일처럼 다루는 것을 말한다. 무심코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세심한 기교가 녹아있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많은 계산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스프레차투라'다. 요즘 말로 하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인데, 바로 그 '꾸안꾸'의 원조가 이탈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정원도 '스프레차투라' 스타일이다. 공을 들여 만들었지만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프랑스 정원과 달리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정형적이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통을 지킨다는 점이 부럽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건물이든 정원이든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한다. 피렌체의 메디치 빌라나 카프라롤라의 빌라 파르네세 같은 빌라 정원을 그린 17세기 그림을 보면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정원 중 몇 곳을 추천한다면.
빌라 란테와 빌라 파르네세를 추천하고 싶다. 모두 로마 북쪽으로 한 시간만 운전하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 소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 이게 이탈리아구나’ 라는 느낌을 준다. 코모 호수는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이면 닿는다. 전 세계 부호들이 이 호수 주변에 별장을 짓고 여름을 보낸다.
한국 정원 중에는 어떤 곳을 좋아하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 정원 ‘희원’은 한국 전통 정원을 현대적으로 꾸민 곳이다. 직접 가서 보니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느꼈다. 과거 셔츠 공장을 운영하던 성범영 선생이 제주도에 땅을 사서 만든 ‘생각하는 정원’도 훌륭하다. 성범영 원장은 4만㎡(약 1만2000평) 규모의 분재 정원과 건축물을 설계도면 없이 스스로 구상하고 만든 분이다.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전국에 수백 개 생겼으면 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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