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는 음악
[이규승 기자]
▲ 제13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공연 후 |
ⓒ 손다혜 |
"2020년 10월,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를 견디지 못한 16개월 아기가 숨을 거둔 사건을 잊지 못한다. 일명 입양아 '정인이 사건'으로 우리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그 뉴스를. 이후 정인이 부모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을 뿐 아니라 '아동학대'라는 단어에 불을 붙인 당사자였다. 이 용어는 당시 사회적 이슈를 언급할 때, 가장 첫 머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의 췌장이 절단됐고, 후두부와 쇄골, 대퇴골이 골절될 정도의 폭행을 가한 양모는 법원에서 징역 35년을, 양부는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오는 2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제15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의 무대를 장식할 '25현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린 꽃(Young Flowers for the 25-string Gayageum and Korean Orchestral Music)'은 얼마 전 우리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한 뉴스에서 촉발된 음악이다.
이 작품은 '정은이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제13회 아창제의 국악부문에 선정됐다. 지난해 8월에는 전주에서 열린 '전주시립국악단 with 아창제'에서 연주됐고, 12월에는 한국음악협회 대한민국작곡상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20년, 우리 사회를 혼돈에 빠트렸던 사건과 연관된 이 곡이 한국 현대음악계에 잔잔한 물결을 친 과정이 궁금해졌다.
"어느날, 뉴스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아이는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쭈그려 앉아서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이 곡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한동안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많은 사건들 속에서 희생되었던 어린 생명들을 모두 이 곡에 담고 싶었다."
손다혜(35)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 '어린 꽃'은 어린아이를 상징한다고 소개했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비극적인 아동학대 사건을 마주하며, 그가 느낀 감정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뿐 아니라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어린 꽃'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품을 설명하자면,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분된다.
우선 도입부는 '구원의 손길'이다. C, D, E, F이 4개의 음을 중심으로 멜로디가 구성됐으며 아이들이 처한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표현한다. 이어 나오는 가야금 솔로는 밝아 보이지만 뭔가 위태로워 보이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는 작은 꽃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불안한 그림자'다. 변박을 통해 불안한 이미지를 나타내며 아이들의 밝고 천진난만한 모습과 대비되어 가슴 아픈 비극을 암시한다.
세 번째는 '어둠 속의 고통'이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숨은 아이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어른들과 사회 속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네 번째는 '한 줄기 빛'이다. 아이들의 작고 망가진 손을 맞잡고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구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훨훨 날아가렴'이다. 강한 멜로디를 통해 상처받고 고통 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가야금 카덴자와 강한 종지를 통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메시지를 표출한다.
▲ 작곡가 손다혜 |
ⓒ 손다혜 |
'어린 꽃'은 25현가야금 협주곡이다. 전체적인 큰 틀은 여느 25현가야금 협주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25현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이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깊은 울림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다르다. 손 작곡가는 평소에 25현가야금이라는 악기에 관심이 두었고, 이 곡을 쓰면서 더 많은 연구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연주자, 청중, 작곡가과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주제와 선율을 풀어가는 데 집중한 것이다.
후반부에 6분 정도의 짧지 않은 가야금 솔로 카덴자에는 곡의 전체를 압축한 구조이다.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아동학대를 당한 어린아이의 가슴 아픈 순간들부터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주기)는 솔로 가야금의 연주를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깊이 더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반영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회에서 경악할 만한 아동학대 사건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가슴 아픈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이 곡을 통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어린 영혼들을 달래주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
▲ 2021년 초연 공연 사진 (국립국악관현악단) |
ⓒ 손다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창작음악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창작음악제 '제15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가 오는 2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 이 축제는 서양의 고전음악이 주를 이루는 한국 음악시장에서 창작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고취하려고 기획됐다. 또한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들이 부담없이 창작관현악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07년에 시작해 올해로 15회를 맞는다.
매년 국악과 양악부문의 관현악곡 작품을 공모를 통해 선정했는데, 지난 15년간 총 171작품을 발굴했다. 올해는 공모를 진행하지 않고, 그동안 발표됐던 작품들 중에서 부문별로 5작품씩, 총 10작품을 연주한다. 이중 19일에 열리는 국악 부문에는 손다혜의 '어린 꽃'을 비롯해 장태평의 '너븐숭이' 이귀숙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1900년 파리, 그곳에 국악 그리고 2012', 이예진의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 '기우'(협연 김인수), 이정호의 수룡음 계락 주제에 의한 '폭포수 아래'가 함께 연주된다.
이제 공연을 얼마 앞두고 손다혜 작곡가에게 15주년을 기념하는 '아창제'에 관한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5주년을 앞둔 아창제에 다시 무대에 나서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손 작곡가에게 '아창제'라는 축제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아창제는 작곡 콩쿠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창작음악계의 현 단계를 진단하고 이 시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연주회를 만들어간다'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어요. 이것이 저를 아창제에 지원하게 만든 이유입니다. 아창제에는 매년 음악적으로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관현악들이 올라오는데, 그 작품들이 오로지 기술적이거나 현대적이라던가 등의 음악적 성격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창제에 계속해서 많은 작곡가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며, 선정된 작품들은 각각의 다양한 매력을 담아 작곡가인 저에게도 큰 감동을 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때문에 15주년 기념공연이 더욱 뜻깊고 의미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추천을 통해서 선정되었다는 것과 여러 다른 훌륭한 작품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그 감동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 연주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기대할 점을 소개해주세요.
"이 작품은 초연 때부터 수정작업이 없이 총 5번 연주가 됐습니다. 2021년 초연 진솔지휘자을 시작으로, 2022년 아창제에 경기 시나위 오케스트라의 원일지휘자, 2023년 8월 전주시립국악단의 심상욱지휘자, 12월에 경기 시나위 오케스트라의 원영석지휘자, 그리고 가장 최근에 연주된 2023년 12월 대한민국작곡상에서 KBS국악관현악단의 박상후지휘자까지. 악보의 수정은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여러 지휘자를 만나 음악적으로 조금씩 다른 해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음악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이번 15주년 공연의 김성국 지휘자님도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 작곡가 겸 음악가로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음악 속에는 제가 만드는 이야기와 관객들의 상상하며 만드는 이야기가 함께 공존합니다. 가야금과 관현악이 만드는 음악속에서 그 메세지를 그려보며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대한민국의 대표 창작음악제 ‘제15회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가 오는 2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 이 축제는 서양의 고전음악이 주를 이루는 한국 음악시장에서 창작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고취하려고 기획됐다. 또한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들이 부담없이 창작관현악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07년에 시작해 올해로 15회를 맞는다.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 작품을 가지고 지난해 12월에는 대한민국작곡상 대상을 받았고, 아창제 재연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곡에 남다른 애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이 연주되고 '대한민국작곡상'에서 대상을 받았네요. 또 다음 달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아창제 15주년 재연공연에 연주가 되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그동안 정말 바쁘게 일하고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 곡이 유일하게 위촉받지 않고 쓴 작품인 것만 봐도 저에게 소중함을 넘어선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 손다혜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정말 큰 역할을 했거든요."
-작품에 협연으로 함께하는 문양숙 가야금 연주자와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이 작품을 25현가야금 협주곡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 큰 이유는 문양숙 연주자에게 있습니다. 문양숙 선생님의 곡을 들으며 이 연주자에게 딱 맞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한동안 문양숙 선생님의 연주 영상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2022년 '아창제' 연주 전날 선생님의 '어린 꽃'을 본인이 해석한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셨고, 그것은 작곡가로서 정말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분과 음악적으로 이렇게 교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한 명의 연주자가 저의 음악을 완전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작곡가인 저에게도 확실히 느껴질 만큼, 음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풀어가며 연주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의 음악을 듣고 위촉해주시는 많은 음악가분들과 작품을 계획 중입니다. 올해도 음악극, 관현악, 음반 등의 여러 작업을 통해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될 거 같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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