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추위 떨었다" 분통…온수 1100t 누수, 난방 끊긴 양천·구로 [르포]
서울 신정동 주민 장모(43)씨는 17일 저녁부터 난방이 끊기자, 집 안에서 경량패딩을 입고 지냈다. 잠을 잘 때는 양말도 신었지만, 한기를 피할 순 없었다. 장씨는 “밤새 추위에 떨고 얼음물같은 찬물로 씻고 출근하니 더 춥다”며 “따뜻한 회사로 빨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류동 주민 박모(33)씨는 “찬물로는 도저히 씻을 수 없었다. 가스레인지로 끓인 물로 머리 감고 세수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후 5시 38분쯤부터 서울에너지공사가 온수난방을 공급하는 신정가압장에 문제가 생겨 양천구 신정동·신월동, 구로구 고척동·오류동 일대 3만7637가구에 난방 공급이 중단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가압장에 설치된 펌프 가압장치 밸브가 노후화돼 펄펄 끊는 115°C의 중온수 1100톤 가량이 누수되면서 복구가 지연돼 난방 중단 사태는 18일까지 계속됐다. 공사 측이 복구 작업을 위해 가압장 내 모든 밸브를 잠군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센터에는 응급 수단으로 지급하는 전기매트를 받거나 샤워장을 이용하기 위한 주민들도 즐비했다. 신정3동의 경우 준비했던 전기장판 100개가 부족하자, 강동구에 전기매트를 빌기도 했다.
최원용 신정3동장은 “주민 10여명이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 오전 1시 40분에도 방문하는 주민도 있었다”며 “가족 단위로 전기매트를 빌리기 위해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위를 피해 각 주민센터에 있는 한파쉼터로 향하는 이도 있었다. 신정동 주민 A씨(68)는 “한기가 느껴지는 집보다는 좋을 것 같아서 찾았다”며 “전기매트도 있고 히터도 틀어져 있으니 이제야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한밤중 한파쉼터를 찾은 주민은 없었다.
일부 주민들은 “당일 복구된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다음 날 아침도 아니고 낮에 복구한다는 게 말이 되냐” “한겨울에 늦장 대응한 것 아니냐” 등의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가압장은 열병합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온수에 압력을 높인 중온수를 주택 난방용 등으로 공급한다. 이에 따라 고온·고압의 물이 가압장을 지나게 된다. 서울에너지공사 관계자는 “신정가압장 지하에 중온수 1100톤이 누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압장으로 향하는 밸브를 잠갔지만, 밸브와 가압장 사이의 배관에 남아있는 물이 가압장으로 추가 누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계 당국은 펌프에 호스를 달아 가압장 내부의 물을 빼고자 했지만, 115°C의 물에 호스가 녹아내리면서 작업이 더뎌졌다. 소방당국이 급하게 가져온 호스는 시간당 16톤 정도만 뺄 수 있었다. 중온수 전용 호스가 도착한 18일 새벽 0시 30분쯤부터 물 배출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18일 오전 9시 30분쯤 배수 작업이 종료되면서 오전 11시 기준 가압장 내 밸브 교체 및 용접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에너지공사에 따르면 빠르면 18일 정오, 늦어도 오후 3시엔 온수 및 난방 공급이 복구된다. 복구와 함께 정확한 밸브 파손 원인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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