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8)

홍석원 2024. 1. 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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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와 웃는 소녀’에서 페르메이르가 구현한 원근법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장교와 웃는 소녀, 1657~58, 캔버스에 유채, 50.5x 46cm, 뉴욕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는 화가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능력과 흥미를 통합한 예술적 원리에 근거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그의 그림을 보면 그가 상상하고 의도한 세계와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다양한 작품에서 소수의 특정 모티브로 여러 물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페르메이르가 살던 당시의 도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의 집과 방들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또 거기에는 어떤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의 그림에서 실제로 묘사된 모티브는 ​가구, 벽의 그림, 지도, 심지어 옷가지의 일부 등이 있는데 그것들은 실재하였던 물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은 지 몇 달 후인 1676년 2월, 파산선고 시 나온 그의 재산 목록에 그런 물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모티브이지만 다양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작품만 제외하고 모두 왼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구도로 그렸는데, 창문의 패턴이 각각 다른 것으로 그가 자신의 집 위아래 층 두 곳에서 그렸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당시에는 판유리가 생산되지 않아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와 유리를 납으로 연결하여 간단한 무늬가 들어간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만들었다. 

또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양탄자는 두 종류이며, 벽에 있는 네 장의 지도와 그림도 각각 다르다. 

페르메이르는 실내를 그릴 때 보는 시점의 위치를 달리하며 모티브를 활용하여 묘사했다. 방바닥에 있는 흑백 타일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정 집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화가가 창작해서 그린 것이 분명하다. ​​ 


원 속 1. 이 장면의 친밀감은 화가가 원근법을 효율적으로 적용하여 생기는 것이다. 장교를 가까이 배치하여 비례적으로 여자보다 훨씬 더 크게 그렸다.

페르메이르는 광학기계인 카메라 옵스큐라의 도움으로 이 효과를 연구하였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구멍이 있는 상자의 렌즈를 통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이미지가 반대편 벽에 투사되도록 하는 장치이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페르메이르가 하녀에게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녀는 상자 속에서 똑같이 재현되는 상을 보며 깜짝 놀란다. 물론 거꾸로 맺힌 상이고, 어린 시절 사진관에서 보던 네 다리 달린 카메라에 맺힌 상과 같은 원리이다. ​​이 원리는 고대 그리스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카메라가 발명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 요한 잔, 오클러스 인공 망원경, 시브 망원경, Camera osscura, from Johan Zahn, Oculus Artcialis Trleedioptricus, sive teiescopium, 뉘른베르크 1702, p.178 위트레흐트, 유니버시티 비베리크

원 속 2는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같이 그림의 일부를 여러 번 유화로 칠했다. 밝은 빛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는 빛의 점들이 있는 투영을 보여준다.​​

원 속 3 햇빛을 직접 받는 창틀은 그림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요소이다. 바깥의 햇빛은 항상 안쪽의 빛보다 더 강렬하기에 흰색으로 표현되어, 방안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 

​'장교와 웃는 소녀' 부문. 

장교복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에서 그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물감의 성질은 밝음, 어두움, 차가움 그리고 따뜻함이다. 물감의 물리적 속성은 불투명한 혼탁, 임파스토(Impasto; 반죽) 그리고 매끄러움이다. 그림 속의 명도는 빛의 밝기뿐만 아니라 칠해진 물감의 질감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따라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밝게 빛나는 부분은 매우 빠르게 칠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인해 그림의 표면은 부드럽고 두텁게 칠해진 다른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은 빛을 포착한다. 

'장교와 웃는 소녀' 부문. 

소녀가 입은 드레스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노란 색의 표현을 바라보고 있으면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은 실크의 ‘촉감’이 느껴진다. 검은 소매 부분은 이미 빛을 받았지만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빠르게 노란 점으로 끊어가며 그렸다. 

그래서 페르메이르의 이 작품은 촉감조차 화폭에 고정시켜 단단하고 영롱한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명암 표현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어두운 부분은 파란색으로, 가장 밝은 부분은 노란색을 가미하여 명암을 강조했다. 이 작품의 경우, 흰색 스카프와 블라우스의 그림자 부분에 파란색을 사용했고, 가장 밝은 부분인 정수리, 이마 그리고 블라우스 앞부분에는 노란색을 덧칠했다.​​

1653년 12월 페르메이르가 델프트의 성 루크(누가) 길드에 마스터로 등록했을 때 15세기 중반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창안된 선원근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당시 여러 논문들은 다양한 구성에서 가장 복잡한 각도에 이르기까지 중심 관점과 지평선의 소실점에 대해 가르쳤다.​

화가는 그림의 관점을 정할 때 보는 사람의 눈높이를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화가가 작품을 그릴 때 대상을 아래에서 더 많이 봤는지 또는 위에서 봤는지에 따라 나중에 완성된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집중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장교와 웃는 소녀’의 중심 소실점(C), 거리점(D1, D2)이 있는 투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을 감상할 때 대각선의 길이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봐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며 관람객들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작품을 봐야 할 지를 생각하며 그리기 때문이다. ​​ 

필자는 전시된 작품을 감상할 때, 멀리서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고 다시 멀리서 전체적인 인상을 본다. 인상파의 모네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면 색만 보이고 형태가 뭉그러져 무엇을 그렸는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일정 거리만큼 떨어져야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임파스토로 마티에르(Matier; 재질)를 표현한 경우 캔버스 옆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물감을 두껍게 사용한 반 고흐의 작품은 그렇게 봐야 한다. 

환조(丸彫)에 속하는 작품들의 경우 전시장의 중앙에 배치해 360도 돌아가면서 감상할 수 있게 배치한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할 때 45cm 떨어져 보기를 원했다. 그 거리에서는 캔버스의 길이가 3m가 넘는 대형 작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테르 데 호흐, 안뜰에서의 음악 파티 부분, 1671, 83.5x68.5cm, 런던 내셔널갤러리

페르메이르는 점차 원근법의 효과를 이해하고 그것에 숙달되었다. 1657년~ 58년경부터 그의 멘토인 피테르 데 호흐는 집안의 인물을 그렸다. 

그는 1654년경부터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기까지 델프트 출신의 여인과 결혼하여 그곳에서7~8년 정도를 살았다. 다른 화가들처럼, 호흐는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핀을 사용하여 소실점을 설정했다. ​ 

페르메이르는 적어도 16점의 그림에서 호흐의 방법으로 소실점을 설정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장교와 웃는 소녀’가 그 방법으로 처음 그려진 작품이다. 

위의 사실들은 페르메이르가 그림 세계를 정확하게 창조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원근법, 카메라 옵스큐라, 알프레히트 뒤러의 조준 그리드와 시야 장치 등을 사용해, 17세기 네덜란드의 중산층의 일상적 실내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그가 그것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으며 애정을 쏟은 물건들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자세히 보아야 한다.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다. 

그는 델프트의 특산물인 타일은 물론이고 메헬렌의 그의 집에 깨끗이 칠한 담벼락까지 사랑했다. 페르메이르는 호흐의 작품에서 여러 영감을 얻고 원근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러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스승보다도 더 맑고 명징하며 순간을 포착한 묘사로 평범함을 뛰어넘고,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는 ‘삶의 보편성’을 획득했다. 

그래서 그가 표현한 고요한 아름다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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