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으며 떠난 고승범, 전 소속팀 존중한 울산…K리그 '아름다운 이적'

김명석 2024. 1.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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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시절 고승범. 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 삼성을 떠나 울산 HD로 이적한 고승범. 울산 HD 제공

“미안해하지 마세요, (고)승범 선수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강등된 팀을 떠나는 에이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선수를 향해 팬들은 오히려 박수와 응원으로 답했다. 선수를 품은 새 구단과 팬들은 이전 구단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더 큰 사랑을 약속했다. 수원 삼성을 떠나 울산 HD로 이적한 고승범(29)의 ‘아름다웠던 이적’ 과정이다.

고승범은 지난 16일 수원과 8년 동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이적했다. 지난 2016년 수원에 입단한 뒤 임대(대구FC)와 군 복무(김천 상무) 시절 잠시 팀을 떠나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 늘 수원 유니폼만 입었던 그는 프로 9년 차 처음으로 이적을 통해 새 도전에 나서게 됐다.

그는 지난 시즌 K리그1 32경기(선발 27경기)에 출전해 2골·1도움을 기록한 수원의 에이스였다. 그러나 수원의 2부 강등 이후 울산의 러브콜을 받고 팀을 떠나게 됐다. 강등된 팀을 떠나 이적을 택한 고승범의 마음은 편할 리가 없었다. 수원에 남아 재승격을 이끌어 주길 바랐을 수원 팬들도 섭섭할 상황이었다.

고승범은 작별의 글로써 수원 팬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그는 개인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어렸을 때 수원 삼성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저에게 꿈의 구단이었다. 8년 전 처음 수원에 입단했을 때는 정말 설렜고 행복했다. 전국의 경기장에서 제 이름을 외쳐 주신 것을 들었을 때는 그 누구다 행복한 선수였다. 팬 여러분들의 응원이 수원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큰 사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고 돌아봤다.

수원과 포항의 K리그1 2023 22라운드. 포항 김준호와 수원 고승범이 경합하는 모습.(사진=프로축구연맹)

이어 “이렇게 정들었던 수원을 떠나게 돼 마지막 인사를 적는다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마음이 무겁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팬 여러분들을 실망시켜 드리고,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되지 못하게 떠나게 돼 정말 죄송하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 지금까지 보내주신 응원과 사랑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친정팀 수원의 재승격을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팀이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수원에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선수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하나가 돼 이 위기를 이겨내고 올해 꼭 승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수원이 올 시즌이 끝나고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저도 많이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 고승범의 마지막 인사에, 수원 팬들은 따뜻한 응원으로 답했다. 한 팬은 “힘든 시기 승범 선수를 응원하며 희망을 노래했다. 울산에서는 승범 선수의 큰 꿈을 꼭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래도 마음속 작은 방에는 빅버드에서 고승범 이름을 외치던 팬들의 진심을 간직해 달라. 우리는 이 자리에서 승범 선수를 변함없이 응원할 것이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수원의 열렬한 팬으로 잘 알려진 가수 박재정도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댓글로 작별 인사를 건넸고, 다른 팬도 “한 글자 한 글자에서 정말 누구보다 수원을 사랑하는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먹먹하다. 승범 선수 덕분에 모든 수원 팬들이 든든했고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다. 울산에서는 다치지 말고 지는 축구 말고 이기는 축구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고마웠고 감사했고 행복했다”고 했다. 그동안 수원 구단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컸고, 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의 진심을 아는 팬들이기에 고승범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응원하겠다는 목소리였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똑같이 팀을 떠난 권창훈(전북 현대)을 향한 수원 팬들의 반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수원 유스 출신인 권창훈은 그동안 그 어떤 선수보다 수원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해 전역 후 수원으로 복귀한 뒤 부상으로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한 데다, 팬들에게 별다른 근황조차 전하지 않고 팀이 강등될 때조차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질타를 받았다. 그는 뒤늦게 SNS 글을 통해 그간 상황을 정리하며 팬들에게 사과했지만, 다음날 곧바로 전북 이적이 확정되면서 수원 팬들의 공분을 샀다.

고승범의 영입을 발표한 울산 HD 구단은 고승범의 전 소속팀 수원 고유의 청백적 이모티콘을 덧붙이는 것으로 고승범과 수원의 관계를 존중해 화제가 됐다. 사진=울산 HD 
수원 삼성을 떠나 울산 HD로 이적한 고승범. 울산 HD 제공

고승범을 품은 울산 구단의 대응도 화제가 됐다. 울산은 고승범과 수원 구단 간 관계를 존중해 그의 영입 소식을 구단 공식 SNS에 알리면서 수원 고유의 청·백·적 이모티콘을 더했다. “(수원에서) 받은 사랑과 응원보다 더 큰 사랑과 응원을 주겠다”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울산 구단의 공식 SNS 계정에 수원 구단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이 등장하면서 수원 팬들은 물론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됐다.

덕분에 수원 팬들은 고승범을 울산으로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울산 구단 SNS를 통해 고마움과 함께 고승범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더했다. 울산 팬들 역시 전 소속팀에서 이 정도로 사랑을 받을 만큼 여러 모로 인정받은 선수의 영입을 반겼다. 한 울산 팬은 고승범의 작별 인사 게시물에 “이렇게 전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로 받은 사랑에 감사할 줄 알고, 마지막 인사까지 제대로 하고 와주는 선수는 정말 대환영”이라며 “수원에서 받은 사랑에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울산 팬들도 많이 사랑해 주겠다. 앞으로 잘해봅시다”라고 응원했다.

울산 구단 관계자는 “구단 공식 계정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구단의 상징 이모티콘을 넣는 데 고민이 컸다”면서도 “고승범 선수가 수원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만약 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선수까지 보냈다면, 우리 입장에선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았고, 그래야 선수도 마음 편하게 우리 구단으로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서로 힘을 주고받은 것 같다”고 했다.

고승범의 영입으로 울산은 K리그1 3연패를 향한 전력 보강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 시즌 중원 구성에 고민이 깊었던 울산은 K리그1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고승범에 최근 새로 영입한 브라질 외국인 선수 마테우스 살리스 등 중원 보강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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