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사망" 北 열차전복 참사 그뒤, 김정은 도발 거세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6일(현지시간) 북한에서 노후화한 철로와 전기 부족으로 인해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해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 실제 열차 사고가 일어난 것은 사실로 파악됐다. 다만 피해 규모는 확실치 않다.
RFA 보도에 대해 국정원은 “관련 보도의 내용을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현재로선 확인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확인도, 부인도 않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실제로 열차 사고가 일어났고, 사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확한 사상자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열차 사고의 특성상 다수가 사망하거나 다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RFA는 함경남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12월 26일 평양을 출발해 함경남도 금골로 향하던 열차가 단천 일대에서 전복됐다. 급경사 고개를 넘으려던 중 열차 속도가 늦춰지더니 기관차 견인기 전압이 약해 헛바퀴가 돌다가 열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밀려 내려가던 열차에 가속도가 붙어 산굽이를 돌 때 열차가 탈선됐고, 열차 뒷부분 객차들이 산 밑으로 떨어졌다”며 “간부들이 타고 있던 상급열차는 탈선하지 않았고, 나머지 7개의 열차에 탔던 주민은 대부분 사망했다”고 했다.
RFA는 “이번 사고로 전복된 7개의 차량에 탔던 인원은 400명이 넘는다는 설명”이라고 부연했고, 사망자를 수백명으로 보도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시신 처리 전담반이 조직됐는데, 1월 13일 현재까지도 전담반이 운영되고 있다고도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번 사고를 의식하듯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철도 운행의 안정성을 높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이 “철도 부문에서는 수송 조직과 지휘를 개선하고 현존 철도 수명을 유지하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라면서 “철도를 끼고 있는 도, 시, 군들도 철길 유지 보수에 항상 관심을 돌리고 필요한 노력과 자재를 제때 보장해 철도 운행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한 대목이다.
다만 RFA가 보도한 피해 규모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인명 피해가 다수 발생했지만, 400여명 전원 사망으로 보기엔 무리라는 취지다. RFA는 소식통을 인용해 사고 당시 단천역 주변에 폭설이 내렸다고 보도했지만,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함경남도의 날씨는 맑고 기온도 높았던 것으로 확인되는 등 사실관계가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수백명이 타고 있던 열차 전복은 큰 파급력을 지니는 대형 사고일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에 의한 정보 통제가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RFA도 또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열차가 전복돼 수백명이 사망한 사건은 철도성을 통해 중앙으로 보고됐지만, 당국은 단천 일대를 비상구역으로 선포하고 주민 여론 통제에 급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와 달리 장마당 활성화와 함께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됐고, 부분적으로나마 지역 간 정보 전파도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2004년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당시 사망자가 150여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심 이반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인명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 또 RFA 보도대로 간부들은 살아남고 주민들만 희생됐다면, 충격파는 더 커질 수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지는 김정은의 거친 대남 위협이 궁극적으로는 내부 결속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열차 전복 사고가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닷새 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또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적대적 국가’로 재규정했다.
RFA 보도대로라면 전원회의 첫날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대남 기조 전환 자체는 계획했던 것이었어도 이런 내부적 상황이 가속도를 붙이는 데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김정은의 전원회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31일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이후로도 김정은의 공세적 언행은 계속됐다. 지난 5~7일 연 사흘 서해 상에서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실제로 포격을 한 게 아니라 발파용 폭약을 터트렸는데, 한국군이 속은 것이라는 식의 담화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발표하는 등 수준 낮은 기만술까지 썼다.
김정은은 지난 8~9일에는 군수공장을 시찰하며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했고,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개헌을 통해 이런 내용을 헌법에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한다는 내용도 함께다.
이를 두고 대남정책의 공세적 전환 이면에는 결국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외부 위협을 부각해 민심 이반을 막고 내부를 결속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전민항전으로 나라도 지키고 혁명적대사변도 맞이하자”는 김정은의 발언에서는 전쟁 위협을 고조시켜 주민들을 정신무장시키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한 대북 소식통은 RFA 보도의 사실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김정은의 연이은 공격적 발언은 내부 민심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나온 것인데, 수백명 사망이 사실이라면 민심 이반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남한을 겨냥하는 건 외부로부터의 위험 요소를 앞세워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이며, 대규모 인명 사고가 이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취지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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