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서양 패권의 퇴색
세계 곳곳 분쟁지서
미·영의 외교노선 한계에 봉착
선택적 법치, 기득권 옹호하는
시장경제·민주주의로
서방의 가치 보편성 잃고 있다
2023년이 지나가고 2024년을 맞았다. 대외 문제에서 지난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패권 경쟁이 주요 관심사였다. 이들 현안 모두에서 미·영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패권이 퇴색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2년이 돼 가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에 수천억 달러를 지원했다. 하지만 승기를 잡지 못했고 이젠 추가 지원을 주저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 영토가 모두 회복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내세우는 원칙은 허물어질 것이다. 협상이 시작되면 ‘러시아가 주권국가를 침략했기에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서방국의 주장은 빛이 바랠 것이고, 협상 결과는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러 간 패권 싸움에 좌우될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긴요하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은 미국 국익이 아니라 11월에 있는 미국 선거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막대한 친이스라엘 성향 기부자들의 후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역사에 기인한 뿌리 깊은 문제 때문에 지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이제 100일을 넘어섰다. 전쟁은 중동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 농후해졌다. 미국은 전쟁을 억제해야 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 노선으로 갈수록 깊이 빨려들어가는 형국이다.
미·중 패권 경쟁에선 경제 대결 구도가 핵심이다. 지난해 5월 이후 미국은 단절을 뜻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정책에서 위험을 줄이자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으로 전환했다. 미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은 세계 120여개 나라의 최대 무역국이다.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중국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봉쇄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22년에 미·중 교역량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점이다.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대중 교역을 줄여 국내 물가가 오르는 것을 초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서양이 주장해온 ‘가치’ 외교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허물어지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난민 르완다 추방 계획, 그리고 미국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문제에서의 입장, 연 200만명이 넘는 멕시코 국경 이민자 처리 등 이 모든 문제에서 미국과 영국은 자국 이익 위주로 돌아서 버렸다.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자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도 답습하고 있다. 2차전지와 반도체 등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이 이를 대변한다. 문제는 이러한 폐쇄적, 자국 위주 정책이 시장경제를 넘어서서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서양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등은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다. 그러나 법치주의가 부자의 재산을 증가시키는 법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금융계·의회 간 집단주의 결합으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늘리는 데 이용되고, 자유주의는 자국민에게만 적용되며 외국인에게는 제외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서방국의 가치는 이제 ‘보편성’을 상실했다. 서양의 가치들은 철학적으로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서양인들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진리, 종교, 법률 등 개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 우선권을 가진다. 동양 문명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공동체주의(relationalism)가 핵심이다. 유교에서 최고의 윤리로 여기는 인(仁)이 바로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의 반대말로 개인주의를 파괴하는 뜻을 가진 집단주의(collectivism)를 사용한다. 동양의 공동체주의는 서양철학 체계에서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서양 문명은 개인주의 창달을 위한 법률과 제도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윤리가 문명의 핵을 이룬다. 윤리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이기심에 대한 경계에서 온다. 이기심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탐욕에 대해 공동체주의의 윤리를 체득하여 사회생활에서 조화를 이루자는 것이다. 서양 문명의 핵심인 개인주의는 내부의 빈부격차를 계속 확대하면서 서양 패권의 퇴색을 자초하고 있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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