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년간 세금 수백억원만 허공에 날린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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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처장 임기 만료…공직자 유죄·구속 ‘0’
유능한 후임자 찾아 ‘성역 없는 수사’ 이뤄져야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오는 20일 퇴임한다. 여야 정쟁 속에 출범한 공수처를 맡아 ‘국민의 신뢰를 받는’ 중립적 수사기구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간 200억원 정도의 예산을 배정받으면서도 임기 3년 동안 단 한 건의 유죄판결도 끌어내지 못했다. 다섯 번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김 처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은 지난 3년간 공수처의 공이 없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부끄러운 실적표를 받고 물러나는 순간까지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공수처 초대 수장으로서 그가 받는 비판은 단순히 실적 부진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검찰의 수사 권력을 분산하고 검경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파헤치라는 취지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배정받은 공수처의 근본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취임 직후 문재인 정부의 실세였던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과 관련해 면담하면서 관용차를 제공한 사실이 발각됐다. 누차 다짐한 ‘인권 수사’는 공염불이 됐다. 야당 인사와 언론인의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들여다본 사실이 드러났다. 압수수색하면서 절차를 지키지 않아 법원에서 망신을 당했다.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김 처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유일한 구체적 해명 사례는 지난해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이후다.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사기관장으로서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최악의 평가 속에 떠나는 초대 처장을 지켜본 여야는 공수처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량이 미흡한 인물이 처장에 오른 경위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12월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처장 인선 과정에서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판사 출신인 김 처장을 추천한 인물(당시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수사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자 “아주 드물게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파견돼 특수사건을 경험했다”며 감쌌다. 이런 식의 인선이었으니 탈이 안 나겠나.
김 처장의 후임 역할은 막중하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그동안 여섯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후보자 2명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지난 정부처럼 역량이 부족한 인사를 임명한다면 향후 3년간 매년 200억원씩 예산만 낭비할 우려가 크다. 당장은 유능한 처장을 찾는 게 급하지만, 여야는 공수처법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 정밀한 보완작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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