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문화의 창] 대한제국의 영빈관, 덕수궁 돈덕전

2024. 1. 1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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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덕수궁은 조선왕조의 5대 궁궐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기실은 대한제국의 황실 건축이라고 해야 맞다.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의 건국이 세계만방에 선포됨으로써 조선왕조는 그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강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됨으로써 종말을 고하였으니 13년간 엄연히 존재했던 황제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한제국은 무늬만 황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흔히는 ‘구한말(舊韓末)’이라고 부르며 1910년을 조선왕조의 마지막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우할지언정 지워질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에 속절없이 당했지만 그냥 무능한 나라는 아니었다. 1893년 10월 4일, 고종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에서 경운궁(훗날의 덕수궁)으로 환궁한 지 300주년이 되는 날임을 기억해 내고 선조가 머물던 즉조당을 찾아와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졌다.

「 비운의 대한제국 황실의 건축들
중명전, 정관헌, 석조전, 돈덕전
근대사회를 지향한 서양식 건축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한 미감

겨울날의 덕수궁 돈덕전. [사진 유홍준]

그러나 1895년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에 이어 1896년에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그러나 고종은 끝내 굴하지 않고 심기일전하여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899년 ‘국제(國制)’ 9개 조항을 발표하면서 제1조를 “대한제국은 세계 만국에 공인되어온바 자주독립한 제국이니라”라고 하였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우선 3년간 미루었던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치르며 국가의 건재를 나라 안팎에 보여주고 근대국가로 가는 광무개혁을 단행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고 황실 스스로 방직, 제지, 유리 공장을 세우며 상공업을 진흥했다. 전기, 전화, 전신, 철도, 전차 등 산업기반시설을 조성했다. 이 모두가 일제강점기 이전 대한제국의 근대적 성취이다.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에 걸맞은 의전 체제를 갖추어 갔다. 석조전(石造殿), 중명전(重明殿), 정관헌(靜觀軒) 등 근대식 양관(洋館)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상징적 건물로 10년 이상 걸려 공들여 지었지만 아쉽게도 망국 이후에 완공되어 제국의 슬픈 역사를 쓸쓸하게 말해준다. 중명전은 고종황제의 집무실로 헤이그 밀사를 파견하였던 대한제국의 독립 의지를 증언해주고 있다. 정관헌은 서양식 정자 건물로 고종이 여기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한다.

그리고 덕수궁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황실 건물로 대한제국의 영빈관인 돈덕전(惇德殿)이 있었다. 돈덕은 『서경』에서 ‘덕 있는 이를 후대하고, 어진 이를 믿는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 돈덕전을 짓게 된 계기는 1902년 10월에 있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稱慶) 예식’에 각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대한제국의 건재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해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시행하지 못하였다. 이듬해(1903년) 4월, 다시 열흘간 대대적으로 벌이고자 행사 일정표까지 마련했지만 험악해지는 국내외 정세로 또 열리지 못했다.

이후 돈덕전은 사신의 접견과 귀빈의 접대 등 제국의 외교의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순종황제의 즉위식도 여기서 거행되었다. 돈덕전은 이처럼 대한제국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는데, 일제는 바로 그런 이유로 1920년대에 이를 허물어 버리고 1930년대 아동 유원지로 만들었다.

돈덕전은 당시 사진들이 여럿 전하고 있어 외관은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내부 구조를 알 수 없었는데, 규장각의 목수현 박사가 『법규유편(法規類編)』이란 책에서 돈덕전 내부의 평면도를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발굴조사 후 원래 모습대로 재건하여 지난해 9월 26일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복원된 돈덕전은 프랑스풍 양관으로 철골조 전돌벽 2층의 연건평 약 700평(2300㎡)으로 발코니와 아케이드가 곁들여 있는 동판지붕집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형태미가 세련되고 의젓하고 품위가 있는 데다 색감이 산뜻하여 근대 국가의 영빈관다운 품위가 있다. 우리가 그간 잊고 있었던 대한제국의 한 이미지를 보는 감회가 일어난다.

돈덕전 앞에는 해묵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깊은 상처 자국을 남기면서도 늠름히 자라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근대 독립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대한제국의 아픔을 상징해 주는 듯하다. 세밑에 모처럼 시간을 내어 돈덕전을 답사하면서 불현듯 120년 전에 행하고자 했던 그 외교 의전 행사를 베풀어 대한제국의 존재를 온 국민에게 각인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게 일어났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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