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이준석의 비빔밥

김현기 2024. 1. 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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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기간 0일, 스승은 유튜브, 세상이 변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1 초밥 장인이 되기 위해선 '밥 짓기 3년, 밥 잡기 8년'이라고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초밥 한 개에 들어가는 밥알은 낮에 320알, 저녁에 280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일본에선 낮, 밤이 아니라 '참치에 230알, 광어에 280알'처럼 소재에 따라 차이를 둔다. 어찌 됐건 한 손에 딱 잡았을 때 정확히 밥알 수를 맞출 정도의 장인이 되려면 유명 가게에 들어가 밑바닥부터의 '수행 11년'이 필수 코스였다.

최근 도쿄 중심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초밥 장인 가키다 가즈히로(33)는 그런 고정관념을 180도 뒤바꿔놓은 인물이다. 그의 수행 기간은 '0일'. 스승은 유튜브다. 밥 짓기, 밥 잡기 모두 유튜브로 1년간 자습해 숙달했다. 관찰력과 끈기, 새로운 발상이 '신개념 초밥 장인'의 성공 비결이다. 이젠 눈 감고도 딱 130g의 밥을 잡는다. 매일 아침 수산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고른 뒤 낮에는 본업(헤드헌팅사 사장), 저녁에 초밥집으로 출근한다. 지금은 140석 카운터의 가게를 거느린다. 어깨너머 '수행 11년'은 그저 고리타분한 옛날얘기다.

기존 '초밥(스시)장인'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140석 카운터를 지닌 유명 초밥 장인이 된 가키다씨. 사진 니혼게이자이신문 캡처


'야마자키' '히비키'의 위스키 브랜드로 유명한 산토리의 니이나미 사장. 그는 최근 향후 최대 경쟁자로 AI(인공지능)를 꼽는다. 조만간 AI가 '야마자키 25년'(약 2000만원)의 맛과 똑같은 술을 불과 몇 분 만에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니이나미 사장은 '술을 안 마셔도 마치 마시고 있는 듯한 세계를 만드는 뇌과학' 분야에 달려들고 있다. 술 제조회사에 술 숙성이 그다지 중요치 않게 된, 참으로 엄청난 변화의 세상이 됐다.


일본도, 미국도, 한국도 시대적 변화에 뒤처진 정치


#2 이런 시대적 변화에 가장 뒤처진 영역이 정치다. 그건 일본이나 미국이나 똑같다. 일본은 자민당 파벌체제가 70년 동안 변함이 없다. 파벌 보스가 돈을 뿌리고 당 총재 선거 때마다 똘똘 뭉쳐 합종연횡한다. 80세 이상의 아날로그 정치 원로 3~4명이 나라를 이끈다. 미국도 다를 게 없다. 대선 패배 직후 폭도들을 의회에 난입하게 선동했던 트럼프가 또다시 차기 대통령 1순위가 되는 나라다. 대선일 기준 82세 바이든과 78세 트럼프의 대결에 과연 무슨 미래와 변화, 역동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는 "그(바이든)의 나이는 자산"이라고 한다. 죄송한 말이지만 이제 과거의 경험은 미래의 절대적 자산이 안 되는 세상이다.

「 유튜브가 '초밥 장인' 개념 바꿨듯
이준석에 기대한 것도 '신개념 정치'
'중고가게 공동대표'면 실망스럽다

올 11얼 미국 대선에서 맞대결이 예상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가 떴다. 반대하는 쪽에선 '떴다방'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다만 '새로운 정치'를 표방했던 이준석 전 대표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등 친낙 세력과 통합 신당을 꾸리려는 움직임은 어찌 봐도 어색하다. 한쪽은 보수고, 다른 한쪽이 진보라서가 아니다. 실제 보수 집권당의 한동훈 비대위원장 같은 경우 "우리가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보수와 진보 간 명확한 경계선이란 게 없고, 그런 구분이 중요한 시대도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른바 '이준석 다움'이란 정체성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닻을 올린 '새로운미래'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이관승 민생당 공동대표, 개혁신당(가칭)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 이낙연 전 대표,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미래대연합(가칭) 조응천, 이원욱 의원. 연합뉴스

이준석의 길


그는 2021년 6월 국민의힘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다. (중략)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다." 난 이준석의 그런 거칠지만 새로운 힘과 개성, 파격에 많은 2030 젊은 유권자들이 호응하고 지지한 것이라 본다. 하지만 지금 이준석이 만들려는 비빔밥은 도대체 뭔지, 이게 변화에 대한 도전인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이 제3지대로 나선 이준석에게 진정 기대하는 건 뭘까. 신기술, 신상품으로 무장한 '신개념 정치 장인'이지 유통기한 지난 구닥다리 중고품 가게 공동대표는 아니지 않나.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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