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 “있을 때 빼먹자”는 노조 vs “기업 가치 향상, 격차 해소” 내세운 노조
몇 달 전 특별 성과급 등으로 근로자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받은 회사. 단박에 웬만한 협력업체 근로자의 연봉을 챙겼다. ‘노조 내지 노사 야합이 원·하청 간 격차(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대·기아차 얘기다. 한데 두 회사 노조가 해가 바뀌자마자 또다시 특별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최대 실적은 조합원 동지들이 흘린 피와 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엄밀히 따지면 협력업체 직원들의 피와 땀이 현대·기아차 성장의 밑거름”이라며 “이걸 외면하고 협력업체 근로자의 노력을 가로채려는 것과 진배없다”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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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기아 특별성과급 또 요구
하청 근로자 외면…격차 심화
일본 노조 “격차 해소 나서자”
춘투, 중소기업 임금 인상 방점
」
때마침 일본도 춘투(春鬪)에 돌입했다. 일본에선 매년 3월까지 임금협상을 한다. 일본의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해서 회사의 인건비 지출 규모를 확정하고, 인건비를 둘러싼 그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회사의 경영 사정을 배려하는 셈이다. 국내 언론이 이 용어를 무분별하게 차용하면서 여름에 노조가 투쟁하면 ‘하투’, 가을에 노사갈등이 생기면 ‘추투’, 겨울엔 ‘동투’라고 갖다 붙인다. 심각한 오류이자 노사관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다.
노조, 노동생산성과 투자 부진 따져
일본 춘투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렌고)가 『렌고백서(連合白書)』를 내면서 시작을 알린다. 백서에는 국내외 사건 사고와 이슈,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일본 기업에 부족한 부문과 개선해야 할 요소, 격차 해소 방안, 현시점에서 일본 경제의 취약점, 장래 일본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사안, 지역별 현안 진단과 타개책, 직업훈련의 문제점과 고도화 방안, 고령사회로 인한 경제활동 인구 감소를 타개할 수 있는 대책 등 ‘국가 정책 백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 각종 실물 데이터를 곁들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내용을 토대로 춘투에 임한다. 선진국 또는 경쟁국과 비교한 정확한 데이터와 경제 상황, 미래 일본 경제 예측 등에 기반을 둔 협상을 하는 것이다. 말이 투쟁(춘투)이지 협상 과정에서 과격한 장면을 보기 힘든 이유다. 몇 년 전 만난 일본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게이단렌) 관계자는 “춘투는 매스컴에 등장하는 용어일 뿐”이라며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춘담(春談)’이나 ‘춘토(春討)’로 바뀐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렌고백서(連合白書) 2024』의 표지에는 ‘다 같이 임금 인상. 무대를 바꾸자! (みんなで賃上げ。ステ?ジを?えよう!)’는 표제가 붙었다. 얼핏 보면 임금 인상에 사활을 건 듯 보인다. 하지만 백서의 내용을 보면 이 표제에 숨은 뜻이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대기업 노조에 중소기업 배려 촉구
백서의 목차를 보자. 제1장은 현시점에서 일본의 경제 상황을 논하고 있다. 사실 『렌고백서』의 첫 장에는 매년 예외 없이 일본 사회와 경제를 진단하면서 노동생산성, 기업 투자 현황 등이 등장한다. 노동생산성 등 근로자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도 춘투의 투쟁 대상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바람직한 노동 태도 확립을 위한 생활 투쟁’이다. 기업에는 설비투자 등의 확대를 요구하며 안정적인 기업 운영을 주문한다. 올해 백서도 마찬가지다. 오르는 물가와 임금을 비교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다루고 있다.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이 대기업보다 소외돼 있다고 꼬집으며, 인력을 유입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빈곤층의 증가와 격차 확대를 별도의 항목으로 짚고, 해결에 나설 것을 산하 노조에 독려하고 있다. 이어 무역수지 악화와 통화가치 하락을 상기시키고, 일본 산업의 힘(力)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을 분석한다. 인구 감소에 따른 대응책에 대한 고민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를 고려해 만든 춘투 방침이 제2장에 들어있다. 제3장에선 지속가능한 일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근로자의 처우 개선뿐 아니라 일본의 재정 건전성 확보, 중장기적인 기업 가치 향상 방안과 노조가 해야 할 역할 등이 제시돼 있다.
“격차 해결은 노조 몫” 산하 노조 독려
결국 올해 『렌고백서』의 ‘임금인상의 무대를 바꾸자’는 표제는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의 임금에 초점을 맞춰 격차를 해소 또는 줄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 억제나 기업가치 향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렌고는 오래전부터 ‘바닥 인상(底上げ)’ ‘바닥 지지(底支え)’라는 용어를 ‘격차 시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매년 화두로 삼는다. 이중구조 해소는 정부나 기업에 요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노조 스스로 자성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읽힌다. 도요타자동차 노조가 2019년부터 임금인상률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런 렌고의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 협력사가 도요타의 임금협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수준으로 임금을 올리는 오랜 관행을 깨고, 도요타보다 높은 인상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일본 언론은 이를 대기업 노조발(發) 이중구조 해소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에선 노조의 활동이 노동개혁 행보다”라고 말했다. ‘있을 때 빼 먹자’는 노조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다 같이 걷자’는 노조, 이게 선택의 문제일까.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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