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가장 쉬운 어려움

2024. 1.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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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영국의 수학자 존 콘웨이(1937-2020)는 ‘엉뚱한’ 발견들로 유명하다. 1970년에는 ‘라이프 게임’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공생명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개인용 컴퓨터조차 없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 장난치듯 창안해 낸 ‘콘웨이 다항식’은 수많은 수학자를 당황시켰다. 복잡한 위상수학의 이론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쉽게 설명해 냈기 때문이다. 마법 같았다. 1980년대에 와서는 이 다항식이 가진 물리학적 의미가 밝혀졌고, 이론물리학자인 에드워드 위튼의 필즈상 수상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샘 솟는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과학 산책

한번은 그가 초청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폭설로 항공편이 취소되었다. 설상가상 경찰은 그를 공항 밖으로 쫓아냈다. 현찰도 카드도 없던 그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로 향했다. 돈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커피숍을 찾아 밤을 보냈다. 자신을 초청했던 동료들에게 연락한 것은 무사히 귀가한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연락의 내용은 밤을 새워가며 풀어낸 수학 문제와 이에 대한 유쾌한 설명이었다. 그가 79세 때다.

연구자의 앞에는 항상 난관이 있다. 이때 당장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떠한 아이디어도 나쁜 생각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교과서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정제된 깔끔한 이론을 가르치지만, 실제 연구는 굽이진 길을 따라간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 싶어하더라도, 우리의 연구 과정은 강릉, 심지어 제주까지 들렀다 와야 하곤 한다.

잘 아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는 과정이 ‘발표’라면, 모르는 것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을 찾는 작업이 ‘질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을 리는 없다. 약간의 불빛이 비치는 바로 그곳에서 좋은 질문으로 시작한다면, 오늘도 생각의 수레는 움직일 것이다. 좋은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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