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맛집 줄 서니? 난 집에서 그집 맛 즐긴다
30대 직장인 김민정 씨는 요즘 주말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홈파티’를 연다. 지난해 초 원룸 빌라에서 투룸 빌라로 이사해 집이 넓어지자 친구들을 부르는 일이 부쩍 많아졌고, 어느새 김 씨에게 친구들과의 주말 홈파티는 월요일부터 눈 빠지게 기다리는 즐거움이 됐다. 이들 홈파티 식탁의 단골 음식은 요즘 ‘핫’하다는 레스토랑 간편식(RMR). 김 씨는 “예전에는 요리해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고는 했는데, 이제는 좀 싫증이 난다. 맛집 메뉴로 맛이 보장된 RMR이 홈파티 음식으로 제격”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직원들도 최근 RMR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전한다. CU 편의점에서 일한 지 6개월 정도 됐다는 전 모 씨는 “RMR 상품은 다른 상품보다 가격이 비싼 편인데도 월별 상품 판매 개수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편의점에서 먹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주로 포장해간다”고 들려줬다.
최근 고금리·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배달 주문은 물론 외식 산업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밀키트를 비롯한 간편식만큼은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양새다. 특히 유명 맛집 레시피를 반영한 메뉴를 담은 레스토랑 간편식 제품이 유독 인기다. 유통 채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RMR 상품 구성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편의점·대형마트서 매출↑
RMR 시장 성장세는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RMR 시장 규모만 집계한 데이터는 없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2년 3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1.4% 급증했다. RMR은 ‘간편식’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국내 간편식 시장은 2022년 기준 5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간편식 중 밀키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해 오는 2025년 7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이다.
RMR 시장 확대는 편의점 매출 추이로도 확인할 수 있다. CU에 따르면 RMR이 포함된 가정 간편식(HMR) 카테고리의 매출 신장률은 최근 5년 연속 해마다 20% 이상 성장했다. 지난해는 24%를 기록했다. CU가 취급하는 RMR 상품 수도 2021년 3종에서 지난해 20여종으로 크게 늘었다. GS25도 마찬가지다.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RMR 상품 매출은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GS25는 지난해 한 해 동안 10여종의 RMR 상품을 내놨다. 세븐일레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RMR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40%나 늘었다. 잇따르는 수요에 취급 상품 수도 2022년 8종에서 지난해 20종으로 대폭 확대했다는 게 세븐일레븐 측 설명이다.
대형마트에서도 RMR이 인기인 것은 매한가지다. 홈플러스는 2022년 밀키트, 냉장·냉동 간편식 1000여종을 총망라한 ‘다이닝 스트리트’ 특화 매장을 열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최근 2개월간 단골손님(VIP+등급) 10명 중 5명이 ‘다이닝 스트리트’ 품목을 평균 약 6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까지 홈플러스의 간편식 매출은 전년 대비 15% 뛰었으며, 품목별로는 PB(자체 브랜드) 밀키트가 22%, 냉동 RMR이 75% 성장했다. 성장세의 중심에 RMR이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PB ‘피코크’를 앞세워 2013년 업계 최초로 맛집과 협업하는 등 일찌감치 RMR에 관심을 뒀다. 이마트 관계자는 “RMR 상품은 현재 10여종이 있는데 지난해 기준 약 7%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배달보다 RMR…품질 경쟁 격화
RMR이 왜 인기일까. 유명 맛집 인기 메뉴를 저렴하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CU는 유명 냉동삼겹살 맛집 ‘후추네’, 원조 부대찌개 맛집 ‘오뎅식당’과 협업한 RMR 상품을 선보였다. 실제 매장에서 식사할 경우 1인분에 1만원이 넘지만 RMR은 2000~5000원이면 살 수 있다. CU 관계자는 “수도권에 편중된 맛집 요리를 전국에서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RMR 인기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GS25에서는 ‘효뜨소고기쌀국수’ ‘이치에멘치카츠버거’가 특히 인기다. 각각 서울 용산구에서 유명한 베트남 음식점과 신사동 유명 이자카야와 협업해 만들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맛과 상품성이 이미 입증됐다는 것이 RMR 상품의 인기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유명 맛집 중에서도 MZ세대가 줄 서는 ‘핫플레이스’가 일차적인 공략 대상이다.
세븐일레븐은 서울 ‘힙지로(새롭고 개성 있다는 뜻의 ‘Hip’과 을지로의 합성어)’ 맛집 ‘화육계’와 손잡고 RMR 상품을 선보였다. ‘화육계’는 최근 유튜브 인기 맛집 추천 채널에도 등장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는 곳이다.
실제 세븐일레븐 RMR 상품 매출의 연령별 구성비를 보면, 일반 간편식 상품에 비해 RMR은 20~30대 매출 비중이 약 15%포인트 이상 높다.
이 밖에도 이마트가 중식당 ‘진진’과 협업해 출시한 ‘피코크 진진 멘보샤’, 서울 광장시장 맛집 중 하나인 ‘순희네빈대떡’과 협업한 ‘피코크 순희네빈대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홈플러스가 유명 식당 ‘채선당 샤브샤브’ ‘이차돌 숙주볶음’과 내놓은 RMR 제품도 식당 유명세에 힘입어 잘 팔리는 품목들이다.
RMR의 인기는 지속될까. 업계 전문가들은 RMR 시장 상승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수요 부진 현상을 감안할 때 배달 음식보다 RMR 상품으로 소비 심리가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등 주요 3사의 결제자 수는 1910만명으로 연중 최저를 기록했다. 2020년 12월 1875만명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 시대에 배달료와 같은 배달 거래 비용이 소비자들에게 과도하게 다가오면서 가성비 좋고 맛도 보장되는 RMR로 수요가 전환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RMR로 소비자 수요가 몰리면서 향후 RMR 시장은 품질 경쟁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분석도 새겨들을 만하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기존 HMR 상품은 편리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면 RMR은 편리함을 넘어 맛집 레시피가 더해지면서 더 높은 수준의 품질을 기대하는 고객층이 늘고 있다. 향후 RMR 시장은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품질을 구현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소비자의 소비 행태가 한번 형성되면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린다. RMR 시장 쪽으로 소비가 계속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유통 업체의 품질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3호 (2024.01.17~2024.0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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