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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현실(XR) 시장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한 풀 꺾였다가, 애플의 XR 헤드셋 출시로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도 XR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은 인공지능(AI)과 더불어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업계에서는 XR 기기가 스마트폰의 뒤를 잇는 차세대 디바이스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과 동시에 휴대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12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는 여러 테크 기업들이 XR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XR이란 VR과 AR, 그리고 현실과 가상을 연결한 혼합현실(MR) 기술을 활용해 확장된 현실 경험을 제공하는 초실감형 기술이다. 독일 지멘스는 일본 소니와 함께 산업용 XR 헤드셋을 개발 중이며, 이르면 올 하반기에 출시 예정이라고 이번 CES에서 밝혔다. 두 회사는 XR 헤드셋에 4K 해상도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와 3D 물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한 쌍의 콘트롤러(조작기)를 탑재했다. ‘비디오 시스루(see-through) 기술은 물리적 공간에 가상세계를 덧씌울 수 있도록 한다. LG전자도 CES 현장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홈엔터테인먼트(HE) 본부 직속으로 XR 사업 조직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스마트폰 사업을 접은 LG전자는 보유한 휴대폰 제조 역량을 향후 XR 사업에 투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CES 전시관에서는 일본 기업의 VR 기기들이 눈에 띄었다. 파나소닉 부스에는 자회사 ‘시프트올’의 전문가용 VR 글래스(안경)가 전시돼 있었다. 마이크로 OLED 패널이 들어가고,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추적해 화면 이동에 적용하는 기술이 탑재됐다. 실제로 VR 안경을 써보니 가상 그래픽으로 만든 일본의 시가지 풍경이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다만 일반 안경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니 전시관에는 VR 기반의 비디오게임 헤드셋 ‘플레이스테이션 VR2’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헤드셋을 낀 관람객이 양손에 콘트롤러를 꼭 쥔 채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중국 선전에 있는 스마트 글래스 업체 ‘NRMyW’ 전시관에도 여러 AR 기기가 전시돼 있었다. 선글라스 모양의 AR 글래스를 써보니 실제 안경을 쓴 것처럼 보이는 현실 공간 위에 마치 스마트폰 화면처럼 웹 검색, 카메라,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이 떴다. 리모컨으로 앱을 선택하면 안경을 통해 눈으로 보는 풍경의 사진을 바로 촬영할 수 있었다.
가상현실 구현에 필수적인 3D 기술의 진보도 엿볼 수 있었다. 롯데정보통신은 CES에서 초실감형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했다. 전시관 무대 중앙에선 음악을 재생하는 DJ의 모습이 바로 위 화면에 실시간으로 3D로 변환돼 나오고 있었다. 롯데정보통신은 화면 속 K팝 콘서트 무대가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3D로 구현되는 ‘라이브 메타버스 기술’도 선보였다.
애플은 오는 19일부터 미국에서 XR 헤드셋 ‘비전 프로’의 온라인 사전 예약을 받는다. 공식 출시일은 내달 2일이 될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해 6월 세계개발자대회(WWD)에서 비전 프로를 처음 공개했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애플 워치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는 새로운 디바이스다. 애플은 올해 CES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XR 시장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애플은 CES 개막 전날 비전 프로의 출시 일정을 밝히면서 먼저 이슈 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비전 프로는 별도 콘트롤러 없이 사용자의 눈과 손 움직임,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헤드셋에는 마이크로 OLED 패널이 2개 들어가고, 픽셀 수는 2300만개에 달한다. 사용자의 멀미를 줄이기 위해 애플의 자체 칩셋인 M2와 새롭게 개발한 칩셋 R1이 들어간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소개할 때 메타버스가 아닌 ‘공간 컴퓨팅’ 개념을 강조했다. XR 헤드셋을 통해 PC나 스마트폰에서 지원되는 다양한 컴퓨팅 기능이 디바이스가 아닌, 집 안이나 사무 공간에서 구현된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비전 프로의 성공 여부가 XR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다른 테크 기업들은 비전 프로에 대한 시장 반응을 보고, XR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XR 헤드셋 ‘메타 퀘스트’를 출시하며 시장에 진입한 메타가 애플의 참전을 내심 반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퀄컴은 삼성전자와 구글이 함께 만드는 XR 기기에 들어갈 칩을 공개하기도 했다. 퀄컴은 지난 5일 기존보다 세밀한 VR 및 MR 경험을 제공하는 ‘스냅드래곤 XR2+ 2세대’ 플랫폼을 소개했다. 단일 칩 구조로 초당 90프레임의 4.3K 해상도를 지원한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XR2+ 2세대를 탑재한 기기는 온디바이스AI를 지원하는 12대 이상의 동시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움직임이나 주변 환경을 추적한다”며 “실제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융합하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삼성과 구글이 해당 칩을 활용한 XR 기기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선 삼성과 구글의 XR 제품이 나오면 애플의 비전 프로와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스앤마켓스에 따르면 XR 시장규모는 지난해 401억달러(약 53조5000억원)에서 오는 2028년에는 1115억달러(약 148조7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22.7%에 달하는 초고속 성장세다. 마켓스앤마켓스는 “교육 및 산업 분야에서 XR 기술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5G 등 통신 기술의 발달이 XR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한 업계 관계자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달리, XR 기기는 아직도 헤드셋이나 안경처럼 쓰면 무겁고 부담스럽다는 평도 나온다”며 “집 안이나 업무 공간 등 실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글·사진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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