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훔쳐간 '금딸기' 1.9톤… "잘 익은 것만 따갔다" 분통 [르포]

안대훈 2024. 1. 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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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없는 ‘깜깜한’ 하우스…딸기 1900㎏ 증발


최근 딸기 도난 사건이 발생한 경남 김해시 한림면의 한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 자동차 전조등을 켜지 않으면, 야간에는 칠흑 같이 어두운 곳이다. 안대훈 기자
17일 오전 6시30분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들. 낙동강을 낀 광활한 이 들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폭 2m의 좁은 농로를 따라 전신주가 서 있었지만, 그 흔한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들판에는 길이 100m, 폭 5m인 비닐하우스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딸기를 재배하는 시설하우스였다. 최근 이곳에서 야간에 출하를 앞둔 딸기 1900㎏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해시·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한림면 시산리·가동리에 있는 시설하우스 11동에서 딸기를 도둑맞았다. 시에 도난 피해를 신고한 농가는 8곳이다. 80여 딸기 농가가 있는 한림면에서 10곳 중 1곳이 피해를 본 셈이다. 피해 금액은 2500만~3000만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2일 피해 농가가 김해시 등에 신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딸기 행방은 묘연하다.

최근 딸기 도난 사건이 발생한 경남 김해시 한림면의 폐쇄회로(CC)TV. 피해 딸기 농가의 비닐하우스로부터 수백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안대훈 기자

행정·수사 당국은 도난당한 비닐하우스가 마을에서 500m가량 떨어져 있고, 하우스에 별도 폐쇄회로(CC)TV도 없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는 마을 쪽 도로에 설치돼 있다 보니, 피해 비닐하우스를 비추진 않는다. 또 비닐하우스 출입문은 철사로 문고리를 묶는 등 별다른 잠금장치도 없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렇다 할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다.


“금딸기, 제일 비싼데 털어가”…농민들 시름


특히 겨울철에는 딸기가 '금값'이어서 농민들은 더욱 안타까워 하고 있다. 겨울에는 추위로 딸기가 잘 자라지 않아 출하량이 적고, 하우스 난방비도 많이 드는 탓에 봄 딸기보다 2배가량 비싸다. 딸기 출하 시기는 겨울부터 봄까지(11~5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따르면 평년 기준 11·12월 딸기 도매가는 2㎏당 3만391원·4만3329원인 반면 3·4·5월의 1만6526원·1만7595원·1만7074원이었다.
딸기. 연합뉴스

피해 농가 관계자는 “지금 딸기가 제일 비쌀 때”라며 “가장 신경 쓰고 바쁘게 일할 때 하우스가 털려 착잡하다”고 했다. 한림면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 관계자 “농자재이든 먹거리든 사소한 도난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여러 농가가 동시에 피해를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번 겨울딸기는 전년 같은 시기보다 값이 더 오르는 상황이다. 2022년 11·12월 5만321원·3만4114원에서 지난해 11·12월 6만4732원·4만4075원으로 약 1만원 더 뛴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지난달 딸기 출하면적이 전년(2022년 12월) 대비 1% 감소했기 때문이란 게 농업관측센터 설명이다.


잘 익은 딸기만 따갔다…범인은 하우스 잘 아는 사람?


경찰은 아직 뚜렷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부 농민은 딸기를 도둑맞지 않으려고 농막에서 밤새 비닐하우스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딸기작목반은 김해시 등에 시설하우스 밀집 지역 주변에 방범카메라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다.
최근 딸기를 도난 당한 경남 김해시 한림면 한 딸기 농가의 비닐하우스. 사진 김해시

이번 딸기 절도범은 한림면 딸기 농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일 것일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농가에선 4~5일 간격으로 익은 딸기를 수확하는데, 당도가 높고 잘 익은 딸기만 골라서 훔쳐갔기 때문이다. 또한 딸기밭 고랑(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만 밟으면서, 폭 1m인 이랑 바깥쪽에 있는 딸기만 따가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농가를 잘 아는 사람의 소행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며 “마을이 아닌 (멀리 떨어진) 도로 등 다른 쪽에서도 농가로 들어왔을 수도 있어, 그쪽 CCTV까지 훑으면서 수상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김해=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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