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든 유족 또 거리로... "이태원 특별법 거부? 정말 비정상적 상황"

소중한 2024. 1. 1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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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유가족협의회, 눈비 뚫고 분향소~대통령실 침묵 행진... "윤 대통령, 잘못된 판단 말라"

[소중한, 권우성 기자]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정부 이송을 앞둔 17일 오후 희생자 159명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향해 특별법 신속한 공포를 호소하며, 서울시청앞 합동분향소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침묵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특별법 제정을 위해 삼보일배, 오체투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움직임에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서울광장 분향소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이들은 눈비를 뚫고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신속하게 공포하고 법에 따라 설립되는 조사기구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국서 모인 유족들 "정말 비정상"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국회의 특별법 통과 후 8일 만인 17일 오후 1시 59분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서울광장 분향소 앞으로 모였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어요. 정말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이른 아침 전주 집에서 출발한 문성철(고 문효균씨 아버지)씨는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씁쓸한 표정을 내보였다. 잠시 후 만난 송후봉(고 송은지씨 아버지)씨 또한 "왜 (대통령이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유족들은 "진실을 향한 희생자 159명의 호소에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발표한 뒤 분향소에 안치된 영정을 하나, 둘 내렸다.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연신 영정을 어루만지던 유족들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즉각 공포하라"고 적힌 현수막 뒤로 줄지어 섰다. 일부 유족들은 영정을 가슴에 품은 채 눈물을 흘렸다.

 행진 하기 전 이정민 운영위원장과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있다.ⓒ 권우성


 행진 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권우성

추상범·황명자(고 추인영씨 부모)씨 부부도 보라색 목도리를 두르고 털모자를 쓴 채 딸의 영정을 들었다. 추씨 손엔 영정 하나가 더 들려 있었다.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난 친구 고 조예진씨의 영정이었다.

추씨는 "예진이 어머님이 다리를 크게 다쳐 제가 대신 예진이 영정을 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영정을 함께 들어 보인 그는 "둘은 친구니까 같이 걸어야지"라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추씨를 비롯한 유족들과, 종교인들이 이날 사정상 현장에 오지 못한 유족을 대신해 영정을 나눠 들었다.

"특별법 정쟁 대상 아냐, 즉시 공포하길"

이들은 서울광장 분향소를 출발, 약 1시간 동안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이주영씨 아버지)은 행진 전 기자회견에서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별법은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누군가를 칭찬하는 법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특별법을 통해) 159명의 청춘이 희생된 참사의 이유와 원인을 알고 싶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법은 국회를 통과했고 이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공포만 하면 되는데 어떤 이야기가 더 필요하겠나"라며 "합법적으로 만든 법을 어떤 명분으로 거부하겠다는 건지 저는 정말 궁금하다. 대통령은 부디 잘못된 판단을 하지 마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염미숙(고 이승연씨 어머니)·이성환(고 이상은씨 아버지)씨는 "그토록 바라던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특별법이 순조롭게 공포될 때까지 우리 유가족들의 눈물과 한숨은 거둬지지 않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그동안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수십만 번 허리 숙여 인사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거리만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삼보일배 행진으로 마포대교를 건너고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을, 그리고 이마를 땅에 찧으며 오체투지로 국회 담장을 따라갔습니다. 전국을 순회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을 만나 특별법 제정 지지를 목이 갈라질 때까지 호소했습니다. 1년 넘도록 정부와 여당의 회피와 외면 속에서 특별법 제정을 목소리 높여 외쳐왔던 유가족들에게 (특별법 거부권 행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이어 유족들은 "특별법은 정쟁의 대상도,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법이 될 수 없다"라며 "다시는 이 땅에서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참사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공포되고 시행되어야 하는 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정부 이송을 앞둔 17일 오후 희생자 159명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유가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향해 특별법 신속한 공포를 호소하며, 서울시청앞 합동분향소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침묵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행진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이 눈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손으로 가리고 있다.ⓒ 권우성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지현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라며 "진실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면 여당은 (18일 예정된 의원총회를 통해) 특별법 공포 의견을 확정하고 윤 대통령은 즉시 공포하길 바란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남병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도 "가족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인데 이걸 정쟁이라고 하다니 서럽고 분하며 지긋지긋하다"라며 "우리 개신교인들은 2000년 전 죽은 청년(예수)을 매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지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연대하고 기도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국회는 지난 9일 참사 발생 후 438일 만에 특별법(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동의청원 통과, 신속처리안건 지정, 여야 합의 불발,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 등의 과정을 거친 법안에는 국민의힘 주장 일부(법 시행일을 총선 이후인 4월 10일로 조정, 조사위원회의 특검 요청 권한 삭제)가 담겼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당시 모두 퇴장했고, 법안은 재석 의원 177인 중 찬성 177표로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오는 19일 국회의 특별법 정부 이송을 앞두고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는 18일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의견을 듣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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