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발굴하듯…40년전 본 사진 속 참상, 9m 그림으로 그렸다"
빈틈없이 널브러진 채 산처럼 쌓인 죽은 이들. 민중의 애환을 묘사해 온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작가 신학철(81)의 신작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이다. 사진으로 본 장면을 9m 캔버스에 그렸다.
1980년대 한국문예진흥원 미술회관(지금의 아르코미술관)에서 우연히 본 사진자료집 속 참상을 그는 잊지 못한다. 40여년 만에 같은 장소에 그 사진을 크게 키운 그림을 그려 건 이유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유해를 발굴하는 것 같았다. 땅속의 죽음을 바깥에 모셔놓듯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맞은 편에선 포개어 모로 누운 남녀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김기라(50)의 영상 ‘눈이 멀고 벙어리인’이다. 폴란드 출신 작곡가 펜데레츠키(1933~2020)의 교향곡 ‘한국’이 깔렸다. “1995년 ‘민중미술 다시 보기’전에서 신학철의 작품을 접하고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고 김기라는 말했다.
1974년 서울 관훈동에서 ‘미술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이 개관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전시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다. 다른 세대, 다른 작가들을 짝 지었다. 공동의 대주제를 두고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꾸리는 역할에서 미술관은 잠시 물러났다.
대신 과거 이 미술관과 인연을 맺었던 관계자들이 작가를 선정했고, 이렇게 선정된 이들이 교류하고 싶은 다른 세대 작가와 자율적으로 팀을 이뤄 새 작품을 만들었다. 박기원과 이진형, 서용선ㆍ김민우ㆍ이승주, 이용백과 진기종, 정정엽ㆍ장파, 조숙진ㆍ이희준, 홍명섭ㆍ김희라 등 9팀이 구성됐다. 공성훈ㆍ김차섭ㆍ조성묵 등 작고 작가 3인의 유작과 미발표작도 함께 선보인다. 3월 10일까지. 무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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