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최후의 보루' 클래식도 스트리밍 시대로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1. 1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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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가들 음반 선호했지만
소비주축인 30·40대 여성
구하기 어려운 음원 많은
고음질 플랫폼서 감상 늘어
공연장·단체 등 디지털 서비스
애플뮤직 클래시컬도 韓상륙
오는 24일 국내에 출시되는 앱 '애플뮤직 클래시컬'의 베토벤 소개 화면.

악성(樂聖) 베토벤의 역작이자 음악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교향곡 9번 '합창'은 182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됐다. 이후 200년 동안 세계 각지의 지휘자와 악단을 거치며 무수히 연주됐다. 애플뮤직이 보유한 '합창' 음원만 1만8000개 이상이다. 어떤 버전을 골라 들을지는 청취자의 손에 달려 있다. 간편함은 기본이고, 고품질 음향도 갖춘 재생 목록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 들어 있으니 말이다. 잘 갖춘 음향 장치 없이도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시장이 활짝 열렸다.

스트리밍 업계의 틈새시장 공급 전략과 클래식 애호가들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클래식 스트리밍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애플이 클래식 음악에 특화한 별도 앱 '애플 뮤직 클래시컬(클래시컬)'의 한국 맞춤형 버전을 이달 24일 출시한다고 밝혀 이목을 끈다.

사실 클래식 음원은 일반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선 비주류다. 미국의 음악 산업 조사기관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클래식 장르의 스트리밍은 전체 장르 중 고작 0.9%에 불과했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스트리밍이 전체의 1.28%를 차지했으니, 한 장르 전체가 가수 한 명보다 적게 소비된 셈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에 의뢰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클래식 스트리밍 비중은 4.4%에 그쳤다.

다만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간 치열한 경쟁에서 새로운 이용자를 발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미국 빌보드는 지난해 클래식 음원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클래식은 미국 내 음반 판매량 비중의 2.7%를 차지하지만 디지털 음원 시장에선 0.8%에 불과했다"며 "클래식 애호가의 소득 수준은 평균보다 높고, 고품질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지급할 의향도 있다"고 주목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층 중에 클래식 청취자가 많다는 점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지니뮤직을 통해 지난해 10~12월 3개월간 클래식 스트리밍 이용자를 연령대별로 분석해보니 30대가 33.8%로 가장 많았다. 40대가 32.7%로 뒤를 이었고, 50대 16.0%, 20대 11.1%, 60대 이후 5.6% 순이었다. 성별 분포로는 남성 43.5%, 여성 56.5%로 이 플랫폼의 클래식 소비 주축은 30대 여성이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국내 클래식 공연의 구매율도 전통적으로 30·40대 여성이 가장 높았다"며 "유럽 등에 비해 연령대의 저변이 넓다는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클래식 초심자나 애호가 모두 플랫폼을 이용하기 간편해졌다"며 "실물 음반을 구하기 어려운 음원도 쉽게 찾아 들을 수 있고, 고음질 음원이 많아 집에서 스피커나 헤드폰으로 가볍게 듣기엔 충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클래식 감상 플랫폼은 맞춤형 검색 기능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기존의 음원 앱은 주로 가요를 기준으로 가수명, 곡명, 앨범명 등으로 색인을 분류한다. 그런데 클래식은 지휘자, 악단과 연주자, 작곡가, 악장, 연주 시기 등에 따라 곡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가요의 분류 방식으론 원하는 곡을 찾기가 어렵다. 이에 애플뮤직 측은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앱을 출시하며 "7년 동안 5000만개의 데이터포인트를 구현하기 위해 기초 메타데이터를 연구했다"고 강조했다. 곡의 역사나 인터뷰 등 정보, 빈 필하모닉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특정 음원 제공 등도 차별점이다. 클래시컬은 애플뮤직과 별도 앱이지만 애플뮤직을 구독하면 함께 이용하는 일종의 '번들 앱'이다.

이 밖에 클래식 특화 플랫폼 중에는 2015년 출시된 독일의 이다지오가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발명품'에 들었을 정도로 이미 유명하다. 한국판은 없지만 영문 버전 앱을 구독하는 건 가능하다. 또 타이달, 코부즈 등이 다양한 클래식 음원을 제공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클래식 감상 플랫폼은 다양화되는 추세다. 독일의 유서 깊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은 2022년 '스테이지 플러스'를 선보였다. 세계 최고의 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도 '디지털 콘서트 홀'을 통해 시즌마다 40개 이상 공연을 무료로 중계하는 등 영상을 제공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달 예술의전당이 DG와의 협업하에 공연 영상 플랫폼 '디지털 스테이지'를 개시했다. 올해 말까지 시범운영 기간이라 무료로 모든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도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공연 영상화를 해오고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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