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 보이는’ 박물관이라니…요즘 대세는 ‘개방형 수장고’

강혜란 2024. 1. 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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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로비에 2개층 높이(약 15m)로 들어선 타워형 수장고.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수장고’다. 도기·토기·석기 위주로 약 6000점이 수납 전시돼 있다. 파주=강혜란 기자


경기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인접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지난 12일 들어서자마자 확 트인 로비에 2개층 높이(약 15m)의 타워형 진열대 3개가 웅장하게 다가왔다. 박물관의 ‘열린 수장고’다. 사방이 유리벽인 이 공간에선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박물관의 유물 분류 체계대로 둘러볼 수 있다(전면개방, 자유관람). 격납형 진열대 한쪽 칸에 요강이 대여섯개, 다른 칸엔 다듬잇돌이 너댓개 모여 있는 식이다. 또 다른 ‘보이는 수장고’는 들어가 볼 순 없어도 유리벽 너머 유물 서랍을 훤히 볼 수 있다(부분개방, 제한 관람).

이 상태에서 특별전도 진행한다. ‘수장고 산책: 아무튼, 동물!’ 전시(2월25일까지)는 복을 상징하는 박쥐, 화목·행복을 상징하는 나비, 입신양명·출세를 상징하는 잉어 등 동물 문양 소장품에 초점을 둔다. 그렇다고 별도로 내오는 건 아니다. 평소 진열된 유물에 동물 문양이 있으면 그 쪽이 더 잘 보이게 돌려놓을 뿐이다. 옹기와 백자를 혼합한 듯한 ‘해주항아리’는 민화풍으로 그려진 여러 문양 가운데 물고기(한 번에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상징)가 잘 보이게 재배치했다. 식물을 주제로 한 지난번 전시(‘수장고 산책: 유리정원’) 때는 모란 문양이 잘 보이게 돌린 바 있다. 부모와 함께 방문한 어린이들은 “용이다” “나비네” 하며 호기심 어린 손짓을 했다.

옹기와 백자를 혼합한 듯한 ‘해주항아리’는 파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 중 하나로 '열린 수장고'에 전시돼 있다. 민화풍으로 그려진 여러 문양들 가운데 특히 물고기 문양(한 번에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상징)이 특별전 기간 동안 잘 보이도록 배치돼 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의 특별전 동안 '열린 수장고'의 전시물 가운데 주제와 맞아떨어지는 유물은 같은 수납 장소 안에서도 눈에 띄게 재배치한다. 동물 관련 특별전 중이라 동물 형태의 연적들을 옹기종기 모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캐릭터 인형은 주제와 관련해 눈길을 끌기 위한 소품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총 3개 층(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이뤄진 파주관은 서울 경복궁 내에 위치한 민속박물관 본관의 수장고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어졌다. 매년 실물 유물만 약 7700점씩 늘어나고 디지털 아카이브도 폭발적 증가 중이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 널찍한 땅에 짓되 이왕이면 관람객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개방형 수장고로 지난 2021년 7월 공식 개관했다.

일반 전시관과 차이점은 유물 관리 프로그램에 각각의 위치값이 입력돼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단 점이다. 구문회 학예연구관은 “건물 설계 때부터 어떤 유물을 타워형 수장고에 놓을지 꼼꼼히 시뮬레이션 했다”면서 “상설 전시가 가능한 도기·토기·석기 위주로 골랐고 어우러지는 모양새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시품이 재질·용도별로 구분돼 있다 보니 특정한 카테고리, 예컨대 수저받침을 한꺼번에 여럿 보려는 관람객이 즐겨찾는 편이다.

타워형 수장고에 놓인 유물만 6000여점이다. 총 16개 수장고 가운데 열린 수장고(7개)와 보이는 수장고(3개)를 뺀 나머지 6개는 비공개형으로 지류(종이)나 섬유 유물, 각종 아카이브 자료(사진·영상 등)를 보관한다. 민속 유물만 8만7859건 14만5108점, 아카이브까지 합치면 105만4809점의 수장품을 자랑한다. 건물 내 카페 같은 편의시설도 없는데 지난해 8만3000여명이 찾았고 올해 1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파주관 바로 옆엔 2017년 문을 연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센터)가 있다. 문화재청 산하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이 건축 문화재의 각종 부재를 수집·보존·연구하러 설립했다. 지난해 8월 센터 내 전시관을 열어 법주사 대웅보전 대들보, 해인사 장경판전 암막새 등 교체된 옛 부재를 진열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수습한 잔해로 2층 문루를 재현해 놓아 관람객 발길이 잦다. 강선혜 부재보존부장은 “주된 목적은 전통 부재 보존이지만 전시관을 통해 열람도 한다”고 소개했다. 센터는 추가로 확보한 부지에 개방형 수장고를 별도 증축하는 논의도 하고 있다.

전통 건축물에 쓰인 부재와 재료를 한자리에 모은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에선 숭례문 화재 잔해를 재활용해 재현한 숭례문 상층 구조부를 만날 수 있다. 중앙포토

파주관과 센터가 위치한 ‘박물관 문화 클러스터’ 부지엔 이 같은 개방형 수장고가 추가로 예정돼 있다. 오는 9월 개관하는 무대예술지원센터는 국립극장·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국립극단·서울예술단 등 5개 기관이 무대장치·의상·소품 등을 한데 보관하는 곳이다. 국립극장 무대예술부 정복모 사무관은 “파주관을 참고해 ‘보이는 수장고’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도 비슷하게 구상 중이다.

국내에서 개방형 수장고는 옛 연초제조창(담배공장)을 리모델링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최초다. 대전에 자리한 천연기념물센터도 비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개방형 수장고에서 공룡 화석 등 진귀한 표본·지질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오는 2028년엔 서울 서초구의 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대지면적 5800㎡)에 서울공예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서울시립미술관 등 3개 기관 수장품을 전시할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가 건립된다. 최근 글로벌 건축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 설계 공모에 당선돼 수장고 겸 미술관의 청사진 작업에 들어갔다.

대전 서구 천연기념물센터의 화석·지질 표본 전문 개방형 수장고에서 길이 10.2m에 달하는 나무화석의 실제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포즈를 취한 센터 직원들. 이 화석은 2009년 경북 포항시 남구 국도 우회도로 건설현장에서 발견돼 3년간 보존처리 작업후 2023년 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약 2000만년전 신생대 지층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사진 천연기념물센터

해외에서도 수장형 전시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앨버트(V&A) 뮤지엄은 2010년 도자실 일부를 ‘스터디 갤러리’로 개방하면서 노출 유물이 3000점에서 2만6000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브루클린박물관도 2005년 개편을 통해 일반 전시실(350여점)보다 개방형 수장고(2500점)에 훨씬 많은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장형 전시가 일종의 유행으로 번지면서 ‘수장고부터 더 크게 짓고 보자’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학 연구자인 이화여대 오영찬 교수는 “수장형 전시를 해야 할 정도로 좋은 컬렉션을 갖춘 박물관·미술관은 국내에서 손 꼽을 정도”라면서 “전시의 양이 아니라 질을 높이는 경쟁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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